노랫말은 3분간 '귀로 듣는 시'로 통한다. 때로는 리듬감을 살리는 조연 역할을 하지만 노래 전체를 지배하는 깊은 울림을 만든다.
프로듀서이자 작사가 최재우의 방향은 후자에 속한다. '오피셜리 미싱 유 투(Officially missing you, too)'를 통해 씨스타 소유를 콜라보의 여왕으로 만들어줬고, 드라마 '시크릿가든' '별에서 온 그대' '냄새를 보는 소녀' '나쁜남자' 등 인기 드라마 OST에 다수 참여했다. 또 제작 기획, 마케팅, 유통 등 음악에 관한 주요 업무를 도맡아하고 있는 가요계 숨은 핵심 인사다. 최재우를 말해주는 여러 명함 중 작사가 의 위치에서, 그 세계를 엿봤다.
-하는 일이 참 많다. 작사까지 병행하기 힘들지 않나.
"쉽지 않다. 다작은 못한다. 거절 당하는 경우도 많다. 가사를 써서 건네주면 1/3 정도는 거절된다. 많은 작품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라서 아주 힘들진 않다. 다만 공들여 쓴 가사가 거절 당했을 때 허무감은 조금 있다."
-작사할 시간조차 없어 보이는데.
"작사는 주로 밤에 집에서 혼자 있을 때 가능하다. 새벽에 음악을 많이 듣고 메모를 하는 편이다. 짧은 글,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지금은 책을 쓰고 있다."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
"사람들을 만나서 주고 받는 대화와 SNS, 커뮤니티 등이다. 어떤 글과 해시태그, 사진, 영상 등을 많이 올리나 자주 살펴본다. 특히 노래 가사를 손글씨로 만들어 공유하는 것을 주의 깊게 본다. 사람들이 정말 애착을 가진 문구를 볼 때 그런 식으로 공유하고 있다. 어느 부분에서 대중이 반응하는지 좋은 참고가 된다."
-드라마 OST를 많이 해왔는데 아무래도 보통 노래와 작업 방식이 다르겠다.
"드라마 시놉시스만 나온 상황에서 곡이 정해진다. 이틀 정도 그 음악만 계속 듣는다. 정체불명의 가이드 가사에 익숙해지면 대략 글자수 파악이 된다. 드라마의 핵심적인 한 장면을 가사로 묘사하는 편이다."
-인상 깊었던 작품 하나를 예로 들어 작업 과정을 묘사해달라.
"효린이 불렀던 '안녕'이 기억에 가장 남는다. '별에서 온 그대'의 배경음악이었는데 정말 쓰기 어려웠다. 마감 당일까지 못쓰고 있었는데 전지현이 과거 사고 당하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다. 전지현 아역이 버스에 치이는 것을 김수현이 구해주는데 금방 사라지지 않았나. 그 일 하나로 전지현은 사랑에 빠졌다. 우연히 내게 다가와줘 반가운 안녕, 헤어질 때 역시 안녕, 그 두 가지 의미를 섞게 됐다."
-기가 막힌 언어유희다.
"두 가지 의미가 있는 언어적 유희를 즐긴다. '우연히 봄' 역시 봤다의 봄과 계절의 봄, 동음이의어를 활용했다. 나만의 차별화 된 색깔로 봐주면 좋겠다. 이러한 유형의 단어를 수집하고 있는데 조만간 책으로 발간하려고 준비 중이다."
-아이돌 노래 가사는 언어 파괴로 도마 위에 자주 오른다. 그런데 또 큰 흥행으로 이어진다. 단어 하나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작가로서 허탈할 수 있는 장면이다.
"상실감, 허탈감에 연연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어차피 나는 댄스 음악 감성이 없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퍼포먼스 위주의 가수들 곡은 아무래도 가사 역시 리듬감에 치중하기 마련이다. 별 느낌은 없는 현상이다. 내가 하는 음악들은 쉽게 귀에 들리면서 자극적이지 않는 것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려는 것은 일종의 신념인가.
"정확히 말하면 공감이 작사의 철학이다. 작사한 곡이 히트하면 주위에서 실제 경험인가, 누구를 생각하면서 썼나 등의 질문이 많다. 내 경험을 쓰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한 번쯤 다 겪었을 만한 일들을 찾고 그 안에서 내 개성을 넣는다."
-30대 중반인데 트렌드 감각을 유지하기 힘들지 않나.
"아직 살아있다(웃음). 음악이 좋아서 피곤한 생활 속에서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기복이 큰 분야라 평생 직업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40~50대가 돼서 20대 감성으로 사랑 얘기를 풀어내기 힘들 것이다. 슬프지만 기회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웃음)."
-향후 어떤 그림을 구상하고 있나.
"가까운 목표로 세가지 테마의 책을 발간하려고 한다. 앞서 말한 이중적 의미의 언어유희, 에세이, 작사법 등이다. 사실 작사에 법은 없다. 다만 가사를 쓸 때마다 이것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실례를 들어주려고 한다. 앨범 기획, 마케팅, 작사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싶다."
심재걸 기자 shim@sporbiz.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