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리인상으로 자본유출ㆍ부동산거품 우려
금리 따라 올리자니 경기부진ㆍ가계부채가 발목
한은 “美 금리 올랐다고 곧바로 나설 필요 없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16일(현지시간) 금리정책 기조를 '점진적 인상' 쪽으로 틀면서 한국은행 기준금리 정책 향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제대국이자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금리인상은 한국 입장에서 대외금리차 축소에 따른 자본유출을 유발하며 금리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부진한 경기회복세, 가계ㆍ기업부채 부실화 가능성 등 국내 여건을 고려할 때 한은이 금리 인상에 신중한 태도를 취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한 상황이다.
한은은 미국 기준금리가 올랐다고 곧바로 동반인상에 나설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미 금리인상 이후 국제금융시장, 신흥국 경기, 국내 경제 상황의 변화를 지켜보고 움직이겠다는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미 연준의 금리인상은 오래전부터 예상돼 왔고 속도도 완만할 것"이라며 "미국 금리인상이 곧바로 한은 금리인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재차 확인했다.
과거 미국 금리조정기에도 한은이 기계적으로 한은 금리정책이 기계적으로 미국 금리 방향을 따랐던 것은 아니다. 직전 미국 금리인상였던 2004~2007년에도 한은은 1년4개월의 시차를 두고 금리 인상에 나섰다. 이정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한은이 통화정책 수단을 기준금리로 변경한 1999년 5월 이후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변화 시차는 평균 9.7개월이었다. 이 연구원은 "한은이 미국과 반대 방향으로 금리를 변경한 경우도 적지 않다"며 "한은이 기준금리 결정에 있어 미국 금리 방향성보단 국내 경기상황을 적극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내수가 다소 회복되고 있지만 국내 경기가 수출 악화 등 전반적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한은이 현재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당분간 유지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연내 1,200조원 돌파가 확실시되는 가계부채 급증세도 국내 금리인상의 장애 요소다. 한은은 금리가 현재보다 3%포인트 오르면 부채상환 부담이 늘면서 금융부채 보유 가구 중 부실위험 가구 비중이 현재 10%에서 14%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가 주로 주택담보대출 급증에서 비롯한 터라 가계대출 부실은 부동산시장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105%로, 외환위기 이래 최고치로 상승하고 있는 기업부채도 문제다. 국내 기업 세 곳 중 한 곳(지난해말 32.1%)이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못 내는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한계기업인 점을 감안하면 금리인상에 따른 줄도산 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체제의 물가안정목표제 역시 한은에 금리인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은이 기존 1~2%포인트 범위의 물가안정목표 대신 2% 단일목표치를 제시하고 정부 또한 성장률 관리 대상에 물가수준과 연동되는 경상성장률을 새로 편입하면서, 한은으로선 현재 1% 안팎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유럽 일본 중국 등 다른 경제대국들이 양적완화 등 통화완화 정책을 유지하면서, 미국 긴축기조 전환에 따른 글로벌 유동성의 급격한 수축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는 점도 한은 금리정책의 자율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국내외 기관 중 한은이 내년 중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골드만삭스, 크레딧스위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중국 및 신흥국 수요가 예상보다 부진하거나 내수회복세가 약화될 경우 한은이 내년 한차례 이상 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페루, 칠레, 콜롬비아 등 다른 신흥국들이 일찌감치 금리를 올리며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상황에서 한은이 국내 경기여건에 치중하다가 금리인상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2004년 미국 금리인상 개시 직후 한은은 두 차례 금리를 내린 뒤 동결하다가 1년4개월 후에야 올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2008년 한국경제가 외환부족으로 위기에 빠진 원인이 됐다"며 "대내외 금리 차이로 자본유출이 늘어난 반면 국내에선 저금리로 부동산 등 자산가격에 거품이 끼고 기업부채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