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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결혼이 사치가 됐으니

입력
2015.12.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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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물었든지 정규직이라야 결혼

저출산 재앙은 국가 비상사태로 봐야

무모하다 싶은 정도의 파격 대책 필요

대한민국 부모라면 맞벌이가 아니어도 아이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익히 절감할 터다. 사실 아이 낳기 전부터 고민이었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을 거라면 아이를 맡길 곳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결혼한 뒤 5년이 속절없이 흘렀다. 주변 선배들이나 집안 어르신들이 닦달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없으면 ‘늙어서 적적하다’거나 ‘이혼을 쉽게 한다’는 등의 충고가 따라붙었다. 보다 못한 처가가 나섰다. 아이를 키워줄 테니 낳으라는 것이다. 덕분에 아이가 6살이 될 때까지는 별 걱정이 없었다.

이후가 문제였다. 아이가 부모와 떨어지려 하지도 않았고 유치원도 가야 했다. 처가 동네에는 유치원이 귀했다. 구립유치원이 있으나 들어가기도 어려웠고, 시설이 낙후했다. 그래서 아내의 출퇴근이 편리한 신도시로 이사했다. 신도시는 아파트단지마다 유치원이 있다. 아파트를 두 개를 얻어 하나를 친척이 쓰게 하는 대신 낮 동안에 아이를 맡겼다. 월세로 따지면 100만원짜리는 족히 됐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모를 쓰는 비용이 더 들었다. 이렇게 2년을 버텼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친척이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눈앞이 캄캄해졌고 아내는 대책 없이 눈물만 흘렸다. 집 근처에 다른 친척을 수소문했다. 어릴 적 가까이 지냈던 그 친척은 다행히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했다. 대신 저녁 9시 이전에 반드시 데려가는 조건이었다. 이때부터 전쟁이 시작됐다. 저녁에는 아내와 번갈아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저녁 약속은 언감생심이고, 일주일에 세 번은 퇴근을 서둘러야 했다. 야근상황이 발생해 난감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일요 근무 때는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출근한 뒤 전화 통화를 하며 버텼다. 이 전쟁은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다. 와중에 둘째를 낳으라는 어르신들의 압박이 있었으나 못 들은 척했다.

주변에는 한 자녀 가족이 흔하다. 다른 사정도 있겠지만 아이 하나 키우기도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 때는 결혼이 필수였다. 아이도 하나는 필수, 둘째부터가 선택이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결혼은 선택사항으로 전락했거나, 사치로 둔갑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거나 정규직으로 취업해야 결혼이 가능해졌다. 결혼도 하지 않는데 출산율이 올라갈 리 없다. 지금 출산율로는 2750년 우리나라 인구는 0명이 된다고 한다. 저출산의 재앙은 국가 비상사태에 준한다.

그런데도 최근 저출산ㆍ고령사회 위원회가 내놓은 ‘제3차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위기감이 약하다. 내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시행될 이 기본계획은 지난해 1.21명인 합계출산율을 1.5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목표다. 2006년 이후 시행된 1, 2차 계획에서 100조원 이상 쏟아 부었으나 출산율은 1.08명에서 1.21명으로 0.13명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1, 2차 계획에서는 저출산의 원인을 양육부담으로 진단, 기혼가정에 대한 단발적인 보육지원에 주력했으나 결국 돈만 쓰고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판명됐다.

3차 계획에서는 일자리와 주거지원을 통한 결혼장려로 방향을 틀었지만, 여전히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젊은 신혼부부에게 전ㆍ월세 임대주택 13만5,000가구를 공급하는 것도 전세대출 한도를 확대해주는 것에 불과하고, 5년간 창출된다는 37만개의 청년 일자리도 정규직과 같은 양질의 것일 리가 없다.

일자리가 안정적이라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그래서 출산율을 높이려면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황당한 제안을 해본다. 아이 낳은 젊은 부부에게 일자리를 우선 제공하는 정책은 어떨까. 그렇다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결혼하고 아이부터 낳지 않을까. 또 일본의 ‘1억 총활약담당 상’처럼 우리도 ‘5,000만 유지 장관’을 임명하면 어떨까. ‘출산과 양육은 정부가 100% 책임진다’는 각오로 무모하게 덤벼들지 않으면 저출산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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