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겨울, 찬바람이 제주를 휘감는다. 세찬 바람에 파도도 거칠어졌다. 겨울 바람은 까만 돌담의 숭숭 뚫린 구멍을 빠져나가며 휘파람 소리를 길게 내뱉는다. 많은 생명이 움츠러들지만 제주의 겨울은 또 다른 빛깔의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계절이기도 하다. 한라의 고원이 흰옷으로 갈아입고 아름다운 눈꽃세상을 펼쳐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한라에 순백이 깃들 때 짙붉은 동백도 정염의 꽃망울을 터트린다.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제주의 푸른 빛이다. 한겨울의 찬바람과 찰진 바다는 더욱 농익은 푸른 색을 풀어낸다.
순백의 한라, 구도의 순례길
한라산은 제주에서 가장 일찌감치 겨울을 품었다가 느지막이 겨울을 떠나 보내는 산이다. 우리 땅 가장 남쪽에 있건만 은하수를 거머쥘 만큼 하늘과 가까운, 제일 높다란 봉우리이기 때문이다.
사방의 바다에서 피워 올리는 수증기가 눈구름이 돼 겨우내 한라산을 덮는다. 한라산의 눈꽃은 그래서 쉽게 지지 않고, 매일 새로 두툼하게 피어난다.
제대로 된 한라산 눈꽃 여행은 하루를 꼬박 걸어야 한다. 한참을 걸어 농밀한 한라의 숲을 지나면 한없이 펼쳐진 고원의 광야를 만난다. 오로지 하양만 가득 채우고 있는 공간. 참꽃의 잔가지들은 가녀린 눈꽃을 피워내고, 우뚝 선 구상나무들은 두툼한 눈의 갑옷을 입고 도열해 있다. 한라의 겨울이 펼쳐낸 마법과 같은 세상이다. 순백을 걷는 한라의 순례객들은 그 길을 엄숙히 걸어 오른다.
한라산 코스 중 정상인 백록담을 오를 수 있는 구간은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다. 어리목과 영실, 돈내코 코스는 백록담 바로 아래 윗세오름까지만 오를 수 있지만 한라의 설경을 만끽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백록담이나 윗세오름까지가 벅차다면 사라오름을 추천한다. 성판악휴게소에서 2~3시간 거리에 있다. 2010년에 개방된 오름으로 백록담처럼 눈을 소복하게 담고 있는 분화구가 있다.
하얀 겨울에 떨어진 붉은 점 하나
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의 카멜리아힐은 이름 그대로 동백의 언덕이다. 17만㎡가 넘는 부지에 온통 동백을 테마로 꾸며놓은 곳이다. 제주의 사업가 양언보씨가 수십년 직접 손으로 가꿔 일궈낸 동백의 정원이다. 사업을 하다 어려움을 겪을 때면 동백꽃에서 시련을 이겨낼 힘을 얻었다는 그는 국내 각 지역 동백을 수집했고, 전세계를 돌며 특이한 동백을 모아 가지고 들어왔다. 카멜리아힐이 보유한 동백의 종류는 500여종, 나무는 전체 6,000그루가 넘는다.
동백의 숲 사이로는 화산토인 송이를 깔아놓은 산책길이 놓여있다. 빨간 꽃잎이 떨어진 산책로를 따라 사색의 걸음을 걸을 수 있다. 연못과 꽃나무가 조화를 이룬 보순연지도 볼 만하다. 카멜리아힐 한가운데엔 가곡 ‘떠나가는 배’의 노랫말을 쓴 제주 시인 양중해(1927~2007)의 삶과 문학 세계를 추모하는 현곡 양중해 기념관이 있다. www.camelliahill.co.kr (064)792-0088
사철 푸름이 감싼 섬 우도
제주에 속한 섬인 우도는 제주의 미를 한데 축소시켜놓은 미니어처 같은 공간이다. 제주의 바다 중 가장 아름다운 빛을 품은 곳이기도 하다.
남북 3.53㎞, 동서 2.5㎞, 둘레 17㎞의 아담한 규모지만 그 어느 곳보다 맑은 해수욕장과 드넓은 풀밭, 흰 등대 뾰족하게 솟은 가파른 해벽 등 그림 같은 풍광을 품고 있다.
우도 관광은 해안도로를 따라 이뤄진다. 우도항에서 시계방향으로 돌 때 처음 만나는 포인트는 서빈백사 홍조단괴 해변. 눈부시게 흰 백사장과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지는 곳이다. 김 우뭇가사리 등 홍조류가 딱딱하게 굳어 형성된 홍조단괴가 다시 부서져 생긴 해변이다.
섬의 북쪽 테두리를 돌아 만나는 하고수동에서도 서빈백사 못지않은 아늑하고 아름다운 해수욕장을 만난다. 작은 만 가득 곱디 고운 모래와 에메랄드 빛 바다가 담겨있다.
우도의 동쪽엔 서빈백사와는 정반대로 검은 모래가 깔린 검멀래 해변이 있다. 우도봉 아래 깎아지른 벼랑이 품고 있는 백사장이다. 이 우도봉 해벽이 품은 오묘한 바다 빛깔 또한 한겨울 더욱 짙어진다.
섬의 전망대 우도봉(132m)은 우도 관광의 하이라이트. 발 아래로 섬 전체의 아기자기한 풍광이 내려다 보인다.
제주=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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