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11시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석탑 서탑(西塔) 해체보수 현장. 부처의 사리가 봉안된 두 개의 심주석(心柱石ㆍ탑의 중심을 지탱하는 돌) 위로 무게 1톤의 세 번째 심주석이 올라갔다. 돌이 깨질세라, 천장 크레인은 20여 차례에 걸쳐 고도를 낮춘 끝에 조심스럽게 돌을 올렸다.
미륵사지석탑 재조립이 본격화했다. 11월 성인 키보다 큰 석탑 기둥 12개로 가로 세로 12.5m의 석탑 1층부가 자리를 잡으며 시작된 석탑 보수작업이 가운데 심주석을 쌓는 데까지 온 것. 지난 3일에는 2009년 1월 사리장엄(舍利莊嚴ㆍ사리와 부속 보관품)이 발견된 첫 번째 심주석에 부처의 사리를 다시 봉안하는 행사를 가졌다.
국보 제 11호이자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석탑 서탑을 해체해 보수키로 한 것은 1999년 탑의 붕괴를 막기 위한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이었다.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의 보수정비사업단이 무려 14년에 걸쳐 해체와 복원연구를 진행해왔다. 김덕문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미륵사지석탑은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문화재”라며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돌의 재질, 석탑의 축조 과정 등을 철저히 고증했다”고 말했다.
1992년 전라북도 주도로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은 새로운 석재를 사용했다가 “20세기 석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서탑 복원에는 원래 부재를 최대한 살려낸다. 김현용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석탑을 구성하는 1,700여 개의 석재 중 탑의 겉면을 구성하는 외부재에는 원래 탑에 쓰였던 부재를 70% 이상 사용하는 것이 보수정비사업단의 목표”라고 밝혔다.
1915년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붕괴를 막기 위해 탑에 콘크리트를 덧씌웠다. 이번 복원에는 콘크리트를 제거하고, 없어진 돌들을 채워 넣는다. 탑의 남서측에 쌓은 석축(石築) 일부를 활용한다. 이 석축은 조선 정조 때 문헌 ‘와유록(臥遊錄)’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이전부터 쌓은 것으로 보이는데, 대부분 탑에서 떨어져 나온 석재로 조성됐다. 석탑 보존을 위한 선조들의 노력이 21세기에 이르러 큰 도움이 되는 셈이다.
본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는 복원 과정에는 부재 보강처리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석축의 돌로도 해결할 수 없는 유실된 석재는 미륵사지 서쪽으로 10㎞ 떨어진 황동면에서 석재를 가져와 깎아 붙인다. 이동식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에폭시 수지를 밀어넣어 금이 간 부분을 메우고 원 재료와의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칠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석탑 보수는 2017년 7월쯤 완료될 예정이다. 익산 주민 일부는 탑이 처음 세워진 모습대로 9층 전체복원을 주장하고 있지만, 문화재청은 석탑의 1ㆍ2층 일부만 복원하고 해체 당시 모습으로 6층까지만 재조립할 방침이다. 정비가 끝나면 석탑은 해체 이전보다 40㎝ 가량 높은 14.6m가 된다.
미륵사지석탑은 639년 백제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할 때 함께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이지만 목조 건축 양식이어서, 동아시아 고대 건축의 형태와 기법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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