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도 일정이 빠듯한 패키지보다는 개별여행이 대세다. 항공편과 숙소를 예약하는 게 다소 번거롭지만 여행지에선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반면 사전 정보가 없으면 불필요하게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기본지식이 필요한 여행지는 아는 만큼 보인다. 이럴 땐 하루쯤 한국인 가이드가 진행하는 현지 투어프로그램을 이용해 보면 큰 도움이 된다. 기본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심리적 부담은 덜고, 자유여행의 효율은 더욱 높일 수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2가지 현지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았다.
▦로마 여행 감 잡았어, 고대로마투어 4시간
3000년 역사의 고대 도시 로마 여행은 역사와 예술에 대한 웬만한 지식 없이는 ‘수박겉핥기’ 수준도 힘들다. 무엇을 봐야 할지, 어디부터 들러야 할지 막막하다. 4시간짜리 걷기여행 프로그램은 로마의 핵심 관광지 위치와 기본 정보를 얻기에 유용한 일정이다. 투어를 마치고 나면 개인적으로 좀 더 보고 싶은 유적과 명소를 찾아가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오전 8시30분, 지하철 콜로세움역 앞에서 가이드를 만났다. 7명이 신청했다는데 2명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불특정다수가 이용하는 프로그램이라 끝까지 기다려 줄 수 없다. 콜로세움 외부 산책으로 바로 투어 시작이다.
서기 70년경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부터 아들 티누스가 집권한 80년까지 약 10년에 걸친 건설 과정에서부터, 해양전투 재현과 검투사 경기 등 콜로세움의 쓰임새와 시대상황까지 30여분간 설명이 이어진다. 콜로세움이 왜 위대한 건축물인지 다시 보인다.
바로 앞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에서 설명이 끝나면 소나무 가로수가 인상적인 거리를 따라 대전차경기장으로 이동한다. 영화 ‘벤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인 전차경기가 열린 곳이다. 팔라티노 언덕 아래 흔적만 남은 경기장은 더디게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전설을 들으며 발길은 아벤티노 언덕을 오른다. 제법 부촌인 듯한 저택 골목을 끼고 길이 끝나는 곳에 몰타기사단 본부가 있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열쇠구멍으로만 볼 수 있는데 용케도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돔이 보인다. 이거 하나 보려고 많은 관광객이 일부러 찾는다.
다시 언덕길을 내려오면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이다. 입구에 유명한 ‘진실의 입’이 자리잡고 있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처럼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입장료는 따로 없지만 입구 헌금함에 친절하게도(?) 한국어 안내문이 적혀 있다. 빤히 지키고 있는 직원 눈치 보느니 동전 한 닢 넣는 게 속 편하다.
대로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로마의 7개 언덕 중 가장 높은 카피톨리노 언덕이다. 고대 로마의 중심 ‘포로로마노’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사투르누스 신전의 거대한 기둥과 정치 경제의 중심이었던 제국의 유적들이 폐허로 남아있다.
투어는 이곳에서 끝난다. 점심식사는 각자 몫인데 가이드로부터 시내 중심부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을 소개받았다. 점심세트메뉴를 시키면 10유로 내외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4시간 약 4km 발품으로 대충 감이 잡힌다. 이제부터는 본격 자유여행이다. 스페인광장과 트레비분수, 판테온 등 한번쯤 들어봤을 명소도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밖에서만 봤던 콜로세움 내부도 꼭 들어가 봐야 아쉬움이 없다. 입장료는 12유로, 팔라티노와 포로로마노까지 관람할 수 있는 통합 이용권이니 비싼 가격은 아니다.
▦작지만 큰 감동, 바티칸 투어 10시간
가이드 만나는 시간 오전 7시20분, 10시간 코스. 자유여행이라는 취지에서 다소 어긋나는 일정이다. 숙소가 가까워도 오전 6시에는 일어나서 서둘러야 한다. 평일 출근시간보다 이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라는데 10시간은 또 뭔가?
어쨌든, 새벽 전차에 몸을 싣고 약속 장소인 테르미니역으로 나갔다. 하나 둘 모인 인원이 30명을 웃돈다. 오붓함은 애초에 글렀고 제대로 투어가 가능할까 은근히 걱정된다. 전날은 100명도 넘었다며 가이드는 아무일 아니라는 듯 무선수신기를 나눠준다. 개인 이어폰을 지참하라는 이유가 이거였다.
이어폰으로 전달되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지하철로 이동해 바티칸과 가장 가까운 오타비아노역에 내렸다. 바티칸 입구에 도착한 것은 오전 8시쯤, 문은 9시에 연다는데 높은 담장을 따라 벌써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아침부터 서두른 이유다. 과장이 있겠지만 성수기에는 조금 늦으면 정오 무렵에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란다. 다행히 바티칸 문이 열리자 마자 입장할 수 있었다. 가이드는 그만큼 여유롭게 설명하고 감상할 수 있다며, 비수기치고도 운이 좋은 경우라는 점을 수차 강조했다.
바티칸 투어는 기본적으로 미술관 여행이다. 본격적으로 관람하기 전 개략적인 해설과 눈 여겨 봐야 할 작품에 대한 설명이 30분 이상 이어진다. 대부분 성화(聖畵)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로마의 역사, 성경의 주요 장면들, 작가와 작풍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해설이다. 미술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겐 더 없이 좋은 기회이고, 그렇지 않은 여행자에게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다. 초등학생들에게는 좀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겠다.
관람은 피나코테카 전시관을 거쳐 솔방울정원과 팔각정원으로 이어지고, 다시 5~6개의 작은 전시실과 ‘라파엘로의 방’을 거쳐 미켈란젤로 천정화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에서 끝난다.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한번쯤은 봤을 법한 익숙한 작품들이 불쑥불쑥 눈에 띈다. 고통스런 인간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라오콘 군상, 내로라하는 철학자들의 모습을 특징적으로 묘사한 ‘아테네학당’이 눈여겨볼 작품이다. ‘천지창조’로 알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는 바티칸에서도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이곳에선 촬영도 해설도 금지다. 거대한 프레스코화가 뿜어내는 성스러운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조치다. 실제 수 백 명의 관람객들이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우리만큼 천장과 벽면을 응시하는 모습 자체가 숭고하기까지 하다.
여기까지 보고 바티칸을 빠져나오면 오후 12시, 인근에서 각자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2시 다시 모인다. 성 베드로 광장에는 이미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섰다. 가이드의 역할은 성당 입구에서 내부 전시물과 관람순서를 안내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성 베드로 광장과 로마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큐폴라(돔)까지는 551계단을 걷거나 엘리베이터를 탄 후 다시 320계단을 올라야 한다. 각각 5유로, 7유로의 비용을 내야 한다. 가톨릭 신자라면 피에타 조각상, 성 베드로의 시신이 안치된 중앙제대와 청동상 등에 감복할 듯하다. 일반 관람객이라도 세계 최대 규모의 대성당과 화려한 장식에 절로 엄숙해진다. ‘로마를 보고 나면 다른 유럽이 시시해질지도 모른다’는 충고가 과장은 아닌 듯하다.
로마=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여행메모]
●현지투어는 가이드(혹은 여행사)가 개별 프로그램을 등록하고 여행자가 선택하는 형식의 M사를 이용했다. 도보투어는 1만9,500원, 바티칸투어는 3만원이 들었다. 개인교통비, 입장료, 식사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대중교통(지하철·버스·트램)으로 로마 자유여행을 하기엔 1회권(1.5유로)보다는 하루권(7유로)나 이틀권(12.5유로)이 편리하다. 지하철역 자동판매기에서 구입할 수 있다. ●대중교통과 도보 길 찾기는 스마트폰에서 구글맵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바티칸과 콜로세움에 입장할 때는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삼각대나 휴대용 칼 등은 가져가지 않는 게 현명하다. 시스티나 성당은 민소매나 반바지 차림으로 입장할 수 없다. ●여권이 있으면 학생할인을 받을 수 있다. 콜로세움은 18세까지 무료, 바티칸은 일반 16유로, 26세 이하는 8유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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