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레인의 사키르 사막 유전지대에서 한 작업자가 삽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극단의 저유가 시대다. 두바이유는 10년 전 가격 수준에 머무르며 휘발유 원가도 ℓ당 500원대로 추락했다. 저렴한 생수 1ℓ제품이 500원 전후라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더운 날 물 대신 휘발유를 뿌린다는 산유국들의 모습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휘발유 가격은 여전히 비싸다. 15일 기준 전국 휘발유 가격 평균은 ℓ당 1434.88원이었다. 원가보다 세 배 비싼 가격이다. 일반 생수와 고급 생수의 가격차이보다 크다.
이유는 있었다. 국제유가가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유류세라는 복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류세 비중이 세계적으로 월등히 높은 수준도 아니어서 소비자들만 애가 타게 됐다.
▲ 국제유가는 고점 대비 절반이나 떨어졌지만 휘발유값은 20%도 채 떨어지지 않았다. 사진은 휘발유 가격을 1,300원대로 낮춘 서울의 한 주유소. 연합뉴스 제공
■ 휘발유가 내리지 못하는 속사정
이미 올 초부터 소비자들은 휘발유 가격에 강한 불만을 표시해왔다. 오피넷에 따르면 작년 6월 24일 두바이유가 배럴당 108.31달러까지 올랐을 때, 국내 휘발유는 평균 1,859.29원에 판매됐다. 그런데 지난 1월 국제유가가 50% 이상 떨어졌음에도 휘발유 가격은 불과 20% 가량만 하락한 1,400원대였다.
올해 들어 국제유가가 최고가인 65.63달러를 기록했던 5월 6일에는 휘발유 가격이 1,517.43원으로 올랐다. 이후 국제유가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음에도 휘발유 가격은 꾸준히 올라 7월에는 1,584원대에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정유사들은 자신들을 가리키는 소비자들의 지탄이 못내 서운한 기색이다. 할 수 있는 만큼 유가하락에 잘 대처해 왔다는 것이다.
휘발유가 논란에서 정유사가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대표전인 논리는 반영 기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업계는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원유가 수입, 정제 등의 과정을 거친 후 시장에 나오기까지 몇 달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국제유가가 휘발유가에 바로 반영되긴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국제유가와 휘발유가 가격 변동 그래프는 대체로 비슷한 양상을 띈다.
유류세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16일 오피넷에 따르면 국내 휘발유는 세금이 붙기 전 가격이 ℓ당 522.03원이었다. 15일 전국 휘발유 가격 평균인 1,434.88의 30%에 불과한 것이다.
나머지 70%를 채우는 것은 유류세와 수입부과금, 관세, 부가가치세 등이다. 이중 유류세가 60.3%, 부가가치세 등이 약 10%다. 따라서 국제원유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정유사가 휘발유가를 내리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 그리 높지만은 않은 유류세
세계 최고 수준의 정유국인 한국은 세전 휘발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순위로는 9번째로 높았지만 가장 가격이 저렴한 폴란드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OECD 18개 회원국 평균(596.55원)보다도 쌌다.
유류세 비중은 최고 수준이었지만 무조건 비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가장 유류세가 높은 국가인 영국보다 10%포인트 가량 낮았으며 평균인 57%보다는 3%포인트 높았다. 유류세 비중과 세후 휘발유가는 각각 18개 국가 중 11위로 하위권이었다.
한국보다 유류세 비중이 높은 나라는 대부분 세전 휘발유가도 저렴한 편이었다. 영국(70.83%)은 539원, 네덜란드(69.2%)는 560원, 이탈리아(68%)는 568원, 그리스(67.17%)는 561원 등이었다.
반면 유류세 비중이 낮은 국가들은 휘발유 생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세전 휘발유 가격이 700원으로 비싼 편이었지만 세금은 14.84%밖에 안됐다. 일본과 뉴질랜드의 세전 휘발유가는 각각 613원, 782원으로 유류세가 47~49%였다.
한국보다 유류세와 세전 휘발유가 모두 비싼 곳도 있었지만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벨기에(62.71%, 616원), 스웨덴 (64.88%, 583원), 핀란드(65.54%, 593원) 등이다.
다만 이같은 사실이 높은 유류세를 정당화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가 고점 대비 절반이상 떨어졌지만 소비자가는 15%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것에 소비자는 쉽게 납득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소비자는 "임대료나 인건비 등 때문에 지역, 점포마다 가격 차이가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높은 세금 때문에 가격 인하가 쉽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세계 수준과 비슷하다고 해도 국내 물가나 경제 사정 등을 고려해서 정부가 휘발유가 현실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재웅 기자 jukoas@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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