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에서 기적이 탄생했다면, 다른 한편은 신음과 시름으로 얼룩졌다. 2015년 프로축구 K리그 소속 시민구단에 드리워진 명암이다.
1997년 대전 시티즌이 시민구단으로서 첫 걸음을 내디딘 이후, 2002년 한ㆍ일 월드컵 열풍에 힘입어 복수의 시ㆍ도민구단들이 탄생했다.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에는 현재 10개의 구단이 들어섰고, 한국프로축구도 양적 팽창을 거듭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모두가 웃을 수는 없는 법. 2015시즌은 10개 시민구단의 성패가 명확히 갈린 해였다.
그 중 가장 긍정적인 성과를 낸 구단은 챌린지 리그(2부)의 수원 FC다. 수원은 5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기업 구단인 부산 아이파크를 2-0으로 꺾고 승강 플레이오프의 최종 승자가 됐다. 2003년 내셔널리그(3부 리그) 참가로 태동한 수원 FC가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한 것.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구단주로 있는 부산 아이파크에게는 수모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간 수원 선수단은 별도의 숙소 없이 수원종합운동장 관중석 아래 마련된 공간에서 밤을 지샜고, 전용 구장 없이 수원 여기산 시민공원에서 훈련을 했다. 기적을 만든 것은 ‘헝그리 정신’이었다.
2년 차 시민구단 성남 FC는 시민구단의 돌풍을 견인한 주역이다. 지난 시즌 FA컵 우승으로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내는 기적을 만들었고, 올 시즌 시민구단 중 유일하게 ‘윗물(상위스플릿)’에서 전북 현대, 수원 삼성 등 쟁쟁한 기업구단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황의조(23) 등 국가대표 공격수까지 배출하는 수준 높은 경기력이 전부가 아니었다. 지역사회 공헌으로 시민구단의 롤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익 성격의 ‘빚 탕감 프로젝트(롤링 쥬빌리ㆍ성남구단의 메인 유니폼 로고)’로 기업 후원을 끌어들이며 자생력을 갖춰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성남의 김학범(55) 감독과는 사제지간인 인천 유나이티드의 김도훈(45) 감독도 시즌 초부터 ‘늑대 축구’라는 새로운 팀색깔을 들고나와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선수들의 임금 체불 등 고난의 행군이 이어졌지만 오히려 위기를 정면 돌파하며 똘똘 뭉쳤고, 결국 FA컵 준우승이라는 결과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시민구단이 비리의 ‘온상’으로 드러나면서 프로축구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종복(59) 전 경남 FC 사장이 최근 외국인 선수 계약 당시 계약금의 일부를 가로채는 횡령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구속된 것. 경남 FC는 전ㆍ현직 심판까지 매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강원 FC 역시 최근 임은주(49) 대표가 사퇴를 선언한 가운데 전직 감독의 외국인 영입 비리 의혹까지 흘러나와 악재가 겹쳤다. 기업구단이 아니라 도민들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도민구단에서 벌어진 일이다.
축구계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라는 얘기가 나온다. 시민구단의 태생적 한계와 불투명한 구단 운영, 성적과 결과에만 집착하는 리그 문화, 성장하지 않는 한국 프로축구의 문제가 얽히고설킨 문제라는 것이다. 풀기 어려운 숙제지만 당장 타개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지자체에 왜 시민구단이 있어야 하는지, 축구를 통해서 지역시민들과 정치권이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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