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철순(왼쪽)-김태균.
10여 년 전만 해도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1억원은 '꿈의 연봉'이었지만 지금은 '고작 1억원'으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내년엔 10억원대 연봉 선수만 현재까지 최소 7명(김태균 윤석민 정우람 이승엽 최정 장원준 강민호)이다.
1985년 재일동포 투수인 청보 장명부가 사상 첫 주인공인 된 억대 연봉자는 올해 무려 136명으로 늘었다. 전체 평균 연봉도 올 시즌 처음으로 1억원을 돌파(1억638만원)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82년 6개 구단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1,215만원이었으니 33년 동안 약 8.8배 오른 셈이다.
1970년대 실업야구는 연봉제가 아닌 호봉제였다. 야구를 잘하든 못하든 연차가 올라야 월급이 늘어나는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었다. 때문에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도입된 연봉제는 프로스포츠 시장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원년인 82년 최고 연봉자였던 박철순(당시 OB)의 연봉은 2,400만원에 불과했으나 강산이 세 번 변한 2015년 김태균(한화)의 연봉은 15억원으로 무려 62.5배나 뛰었다.
반면 최저 연봉은 82년 600만원에서 33년 동안 2,100만원 오른 2,700만원으로 고작 4.5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가파르게 오른 스타급 선수들의 연봉에 비해 대다수 선수들의 연봉 상승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82년 최고액을 받은 박철순의 연봉은 당시 평균 연봉의 2배 정도에 불과했는데 올 시즌 김태균의 연봉은 평균 선수들보다 약 14.1배나 많은 수준에 이르렀다. 최고-최저연봉 선수의 격차 역시 82년 4배에서 올해 55.6배로 껑충 뛰어올랐다.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최고 연봉을 다퉜던 선동열(당시 해태)과 최동원(당시 롯데) '양대 산맥'의 퇴장으로 잠잠하던 연봉 인플레이션은 99년 도입된 FA(프리에이전트) 제도로 또 한 번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2000년 홍현우(당시 해태)가 LG로 옮기며 받는 4년간 18억원은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수치로 느껴졌다. 그로부터 올해 박석민(NC)의 4년 96억원까지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를 유발한 FA 제도의 이면에는 선수 간의 소득 격차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맹점이 있었던 것이다.
82년 프로야구 선수 평균 연봉 1,215만원은 당시 서울의 30평형대 아파트 가격이 2,000만~3,000만원대이고 대졸 사원의 초봉이 연 200만원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현재 서울 강남의 30평형대 아파트 가격이 10억원 안팎이라고 했을 때 최근 대형 FA 계약을 맺은 몇몇 선수들은 손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어지간한 선수들은 꿈도 꾸지 못한다.
평균 연봉 1억원 시대가 열렸지만, 등록 선수 중 절반 이상은 5,000만원도 받지 못하는 연봉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성환희 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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