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2월 16일

제정 러시아의 명을 단축시킨 것으로 알려진 수도사 그리고리 라스푸틴

왕조의 패망 뒤에는 으레 패망의 전설이 있다. 그 전설들은 야사(野史)의 이름으로 역사의 아랫단에 놓이기도 하고, 창작에 버무려져 ‘팩션(Faction)’처럼 전승되기도 한다. 개조(開祖)의 전설이 신화를 닮는 반면, 패망의 전설은 괴담의 기결을 좇는다. 전자는 성쇠의 세월에 졸아들기 마련이지만 후자는 거꾸로 부풀려지기도 한다. 중국 한말의 환관들이 그랬고, 신라 진성여왕 주변이 여말의 승려 신돈이 그랬다. 역사는 그들 ‘악마’에게 패망의 큰 책임을 떠 안김으로써 모든 끝이 수반하는 유혈과 비극의 짐을 덜고, 오래 추종했던 권력에 대한 배덕의 죄의식도 눅인다. 러시아 마지막 제정 홀슈타인 로마노프 왕조의 ‘악마’는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i Rasputin)이었다. 그가 율리우스력으로 1916년 12월 16일(볼세비키 혁명 이후 그레고리우스력으로는 12월 29일) 숨졌다.

‘전설’에 따르면 라스푸틴은 신통력을 지닌 수도사였다. 기도로 병을 치유했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니콜라이 2세의 아내 알렉산드라 황후의 신망을 얻은 것도, 혈우병을 앓던 황태자(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의 병세를 완화한 덕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극심한 신경쇠약증 환자였던 황후의 총애로 라스푸틴은 왕조의 실력자가 됐고, 각료 인사를 비롯한 내정 전반을 좌지우지했다. 제정 말기의 가혹한 노동자ㆍ농민 수탈과 압제 특히 유대인 등 소수민족 박해와 언론ㆍ사상 통제의 지휘자는 사실상 허수아비였던 황제가 아니라 라스푸틴이었고,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된 1905년 1월 22일 ‘피의 일요일’ 즉 급료 인상 청원에 나선 20만 명의 노동자를 총칼과 대포로 짓밟은 권력의 배후도 그라는 설이 있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일가.

1914년 1차대전이 터지자 황제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참전했고, 라스푸틴은 권력에서 소외된 귀족들에 의해 살해됐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라스푸틴은 연회에서 독약을 먹고도 2시간 넘게 춤을 추며 건재했고 총을 네 발이나 맞고도 숨이 멎지 않자 귀족들이 쇠지팡이로 그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킨 뒤 양탄자에 싸서 네바강에 던져 익사시켰다고 한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그의 성기가 얼마나 우람했고, 그가 그걸 어떻게 권력화했고, 사후 잘려진 그의 음경이 어떻게 돌려졌는지 등등의 전설은 인터넷에 널려있다.

라스푸틴이 숨진 지 석 달 뒤 2월 혁명이 발발했고, 10월 혁명으로 레닌 볼셰비키 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됐다. 황제와 황후, 아나스타샤를 비롯한 그들의 4녀 1남은 18년 7월 17일 총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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