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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욱 개인전... 이산가족 방송에서 미디어 본질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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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욱 개인전... 이산가족 방송에서 미디어 본질 찾다

입력
2015.12.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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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재편집한 임민욱의 영상작품 ‘만일의 약속’ 중 한 장면. 삼성미술관 제공
KBS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재편집한 임민욱의 영상작품 ‘만일의 약속’ 중 한 장면. 삼성미술관 제공

서울과 대구의 방송국에 출연한 두 사람의 얼굴이 이중 분할 화면으로 병치됐다. 10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1983년 KBS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일부분이다. 누가 봐도 확연히 닮은 한 쌍의 얼굴들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화면은 그 어떤 인위적으로 만든 영상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상ㆍ퍼포먼스 작가 임민욱(47)이 서울 태평로2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만일의 약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만남, 공감이라는 미디어 본질의 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와 같은 이름의 이 영상작품은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의 일부를 편집해 크게 확대한 것이다. 임민욱은 “방송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일종의 기념비처럼 만들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민욱이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 주목한 이유는 뭘까. “1983년 이산가족 방송은 그 동안 잊혀져 있던 몫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가시화한 방송이었습니다. 당초 1시간 30분으로 계획됐던 방송이, 이산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400시간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방송사가 잊혀진 이들의 만남의 장이 됐던 겁니다.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조명하고, 단절됐던 사람들 사이의 인연을 회복한 기적적인 사건이었어요. 저는 미디어가 이런 기적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단 현실 속에서 대화의 가능성을 제기한 조각 ‘통일등고선’ 앞에 선 임민욱. 천지와 백록담이 있어야 할 산 정상에 쉬이 녹는 파라핀 소재로 남북을 상징하는 건물이 조각돼 있다. 삼성미술관 제공
분단 현실 속에서 대화의 가능성을 제기한 조각 ‘통일등고선’ 앞에 선 임민욱. 천지와 백록담이 있어야 할 산 정상에 쉬이 녹는 파라핀 소재로 남북을 상징하는 건물이 조각돼 있다. 삼성미술관 제공

공동의 경험을 찾아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시도는 임민욱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바다. 다만 그는 “문제의식은 이어가고 있지만, 작업 방식은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매체의 보편적인 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키는 본연의 기능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시민의 문’은 컨테이너의 문 부분만 남겨 대문처럼 만든 설치작품이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시대의 유행가와, 트레일러 운전사의 일상생활 소음이 흘러나온다. 삼성미술관 제공
‘시민의 문’은 컨테이너의 문 부분만 남겨 대문처럼 만든 설치작품이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시대의 유행가와, 트레일러 운전사의 일상생활 소음이 흘러나온다. 삼성미술관 제공

컨테이너의 몸체를 잘라내고 문짝만 남겨둔 ‘시민의 문’도 이러한 맥락에 닿아있다. 활짝 열린 ‘시민의 문’의 안쪽에 들어가면 조용필의 ‘서울서울서울’부터 소녀시대의 ‘런 데빌 런’까지, 혹은 존 레논의 ‘이매진’에서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까지, 세대와 지역과 장르를 초월한 음악이 흐른다. 연주 곡목은 “이 세계 어딘가 길 위에서 트레일러를 운전하는 사람이 듣고 있을 법한 라디오 방송”을 염두에 두고 구성됐다. 임민욱은 “‘시민의 문’이 세대와 지역을 넘어서 모든 이들의 공감의 장소가 됐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공감을 중시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다. 이 작품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들이 희생된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과 경남 진주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의 피해자 유해를 컨테이너에 담아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 유가족들과 만나게 하는 작업이었는데, 그는 “퍼포먼스를 보면서 정작 내 마음 속이 답답해졌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해야 할 애도와 추모의 감정이 오히려 컨테이너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소수 특정 대상만을 위한 것처럼 부각됐기 때문이다.

임민욱은 “이산가족 방송의 의미는 만남 그 자체에 있다”고 말했다. 1983년 방영 당시 이산가족 방송은 전두환 정권의 대북 외교 공세에 동원됐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으로 연결됐다. 하지만 임민욱은 이산의 아픔이 결코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람들만의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이산가족 상봉은 물론 인도적으로 옳은 작업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몫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분들도 있고 멕시코에 있는 이주노동자 분들도 있어요. 그렇게 잊혀진 이들을 조명하고 모두와 공감하는 작업을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2016년 2월 14일까지. 입장료 2,000~3,000원. 1577-7595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설치작품 '허공에의 질주'는 방송 촬영장을 흉내 낸 작품이지만, 작가 내면의 풍경이기도 하다. 사람의 몸에 달린 카메라, 나뭇가지에 매달린 지미집 조명기구 등 유기체와 결합된 방송장비야말로 “인간적인 미디어”라고 임민욱은 설명했다. 삼성미술관 제공
설치작품 '허공에의 질주'는 방송 촬영장을 흉내 낸 작품이지만, 작가 내면의 풍경이기도 하다. 사람의 몸에 달린 카메라, 나뭇가지에 매달린 지미집 조명기구 등 유기체와 결합된 방송장비야말로 “인간적인 미디어”라고 임민욱은 설명했다. 삼성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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