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가 꿈이었고, 요리사를 하고 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음식의 맛이나 구성에 큰 충격을 받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온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토마스 켈러의 레스토랑 부숑(Bouchon)에서 맛본 ‘푸아그라 도그 비스킷’. 그렇다. 애견용 과자다.
6년 전 미국 요리학교 CIA에서 유학을 막 시작하던 시기였다. 입학한 지 4개월이 되었을 때 무작정 여러 장의 이력서를 들고 뉴욕에 내려갔다. 휘황찬란한 간판과 불빛들을 뒤로하고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셰프 토마스 켈러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퍼 세(Per se)’였다. 이력서를 전달하고, 연락을 기다리고, 다음주에 다시 이력서를 전달하고, 연락을 기다리고…. 이렇게 3주가 지나고 나서야 스타지(무급 인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뉴욕에서, 그것도 가장 동경하는 셰프 토마스 켈러의 레스토랑이라니. 꿈만 같았다.
영어도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수없이 날아다니는 말들을 잡아내며 바쁘게 일을 하다 첫날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모든 셰프들과 인사를 한 후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부랴부랴 주방을 나가던 순간, 통로에 세워져 있던 제빵용 카트에서 마침내 ‘그 음식’을 발견하고 말았다. 허락 없이 뭔가를 집어먹어서는 안되었고, 걸리면 크게 혼날 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왠지 빨리 하나를 집어먹고 싶었다. 주위를 살피며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무엇을 집을까 살피다가 소심한 내 눈에 들어온 작은 과자가 있었다.
누가 봐도 개 뼈다귀 모양의 과자.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과자 하나를 낼름 입에 집어넣고 뛰어나가듯 레스토랑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과자를 당차게 깨문 순간 이와 이 사이에 부딪히는 이 강한 식감은 뭐지? 딱딱함만으로도 이미 충격이었다. 이렇게 유명한 곳에서 어떻게 이런 식감의 비스킷을 만들 수 있을까? ‘뭔가 의도한 게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내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런 걸 거야’ 라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맛을 느껴보려 꼭꼭 씹었다. 그렇게 집중해서 먹다 보니 짠맛도 단맛도 없는 담백함과 고소함이 느껴졌다.
수개월 후. 여러 셰프들과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이가 됐을 때, 주방 한 켠에서 열심히 볶아지고 있는 푸아그라를 보았다. 지방을 다 빼듯이 볶는 푸아그라를 보면서 왜 이렇게 세게 볶는지 물어보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거 개들 먹는 쿠키에 들어가는 거야.” 어라? 이상한 생각이 들어 베이커리 쪽으로 넘어가 물어보니 매우 익숙한 과자를 하나 보여줬다. 내가 스타지 첫날 몰래 집어먹었던 그 비스킷이었다. 허탈한 웃음과 함께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그런데 왜 레스토랑에서 애견음식을 만들까? 푸아그라를 많이 쓰는 그 레스토랑에선 요리에 사용하기 힘든 잔여물이 많이 생기는데, 고단백질인 간에서 기름을 뺀 후 남는 순수한 단백질을 개에게 주면 참 좋아한다는 것이다. 뉴욕에는 애견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 손님들이 가게에서 식사를 하면서 자신의 식구인 강아지들한테도 사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거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부처님이 해탈하듯, 새로운 개념이 머릿속에 생기게 되었다. 요리사가 음식을 한다는 것은 직업적으로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요리가 단순히 미각적인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라는 한 개인과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의 행복을 만들어주는 일이라는 교훈을 그날 배웠다. 손님의 애견까지 생각하는 마음과 남는 재료를 어떤 식으로든 활용하려는 요리사의 센스는 지금 나의 레스토랑이 추구하는 ‘예약부터 식사 후 집에 돌아가는 순간까지의 완벽한 경험에 대한 고민’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다이닝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한끼 식사를 넘어서는 이유인 것 아닐까. 그날 내가 몰래 먹었던 음식이 사람이 먹는 음식이었다면 난 이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을 거다. 그날의 내 바보스러움에 감사함을 느끼는 이유다.
◆이준 셰프는?
2008년 경희대 조리과학과, 2010년 미국 컬리너리 인스티튜트 오브 아메리카(CIA)를 졸업하고 ‘퍼 세’ ‘링컨 리스토란테’ 등에서 파스타 메이커로 근무했다. 현재 모던 코리안 다이닝을 선보이는 스와니예의 오너 셰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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