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구의동의 한 연습실. 짧은 백발의 노인이 드럼 앞에 앉았다. 얼룩무늬 군복 바지를 입고 드럼 스틱을 자유롭게 튕기는 모습이 젊은 연주자 못지 않게 열정적이다. 한국 재즈 타악계의 거장인 류복성(75)의 손은 쉬는 날이 없다. “두 명을 놓고 연주한 적도 있다”는 그는 매달 자신의 연습실에서 ‘류복성 재즈 올스타즈’와 함께 하우스 콘서트를 연다. 이를 위해 노장은 매일 두 시간씩 운동도 거르지 않는다.
한국 재즈의 활성화를 위해 류복성이 작업실 밖으로 나왔다. 그는 17~18일 이틀간 서울 압구정동 한국국제예술원 예홀에서‘대한민국 재즈페스티벌’을 연다. 한웅원 밴드, 정중화 퀸텟, 임달균 밴드, 송준서 그룹 등 여러 한국 재즈 음악인들이 모인다. 1992년 제1회 ‘대한민국 재즈페스티벌’의 총감독을 맡았던 류복성이 이번에도 행사를 이끈다. 23년 동안 잠들었던 ‘대한민국 재즈페스티벌’을 깨운 이유는“책임감 때문”이다. 그는 “1992년에 행사를 만들 때 영화제나 국악제는 있는데 재즈 페스티벌이 없어 여태 내가 뭐했나란 생각이 들어 기획한 것”이라며 “지금은 MBC ‘수요예술무대’도 없어지고 한국 재즈 음악인들이 잔치를 벌일 곳이 없어 다시 나섰다”고 말했다.‘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이나 ‘서울 재즈페스티벌’이 있기는 하지만, 외국 재즈 뮤지션들의 초청 무대 성격이 짙다. 이 현실에서 한국 재즈 음악인들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축제가 필요했다는 게 류복성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 재즈의 역사도 반세기를 넘겼고 뛰어난 연주자도 많이 배출했다”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의 존재를 아는 음악팬들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류복성은 17세부터 미8군에서 드럼 연주를 시작해 이봉조 악단과 길옥윤 재즈올스타즈 등을 거친 한국 재즈 역사의 산 증인이다. 그가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1970~80년대 인기를 모았던 MBC 드라마 ‘수사반장’과의 인연 덕분이다. 류복성이 타악기인 봉고를 연주한 ‘수사반장’ 타이틀곡은 드라마와 함께 노래까지 당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수사반장’ 얘기를 꺼내자 류복성은 “역사와 전통이 있던 드라마가 끝나 정말 안타깝다”며 옛 얘기를 한 참 풀어놨다.
자유로움을 위해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군복 바지를 입고 다니는 그는 지난 2010년 개봉한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에서 젊은 재즈 학도와 소주 잔을 기울이며 자신을 “재즈 거장이 아니라 거지”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난 부자 안 부러워, 재즈 뮤지션이니까”라고 당당해했다. 팔순을 앞둔 노장에게 향후 계획이란 우문을 던졌더니 뜨거운 답이 돌아왔다. “행사 포스터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려. 명예? 돈? 열정을 갖고 살아야지. 이것만으로도 행복해.”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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