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교체
6인 모두 30대.. 전면적 쇄신 착수
“다른 예술과 소통 강화”
“좋은 게 좋다는 식 비평 경계”
“현 문예지는 국내 작가들의 신간 소설, 시에 대한 현장비평이라는 협소한 역할에 머물러 있습니다. 비평의 형식도 일종의 장르처럼 굳어져 독자와 소통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판단입니다. 문학과사회는 이런 틀을 깨고 한국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방향으로 변화하고자 합니다.”(강동호 문학평론가)
12일 창간 40주년을 맞은 문학과지성사(이하 문지)가 계간 ‘문학과사회’의 편집 동인을 교체하고 전면 쇄신에 들어갔다. 내년 여름호부터 본격적으로 계간지 편집에 참여할 5세대 편집동인 6인의 나이는 전원 30대. 기존의 강동호(31), 조연정(38) 외 서평가 금정연(34), 문학평론가 조효원(33), 번역가 이경진(33), ‘말과활’ 기획위원을 지낸 김신식(33)씨 등이 새로 합류했다. 1975년 창간 당시 1세대 동인들의 나이도 30대였지만 고령화 추세 및 다른 문예지 편집위원 나이대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파격적이다.
새로운 편집동인들이 만들어갈 문지의 방향은 ▦문학 외 다른 예술 장르와의 긴밀한 소통 ▦평단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왔던 1980~90년대 문학사에 대한 성찰 ▦당대 문학에 대한 비판적 자세로 정리된다. 이를 위해 문학 외 분야를 향해 이례적으로 문을 활짝 열었고, 제호 변경도 고려 중이다.
5세대 편집동인 중 한국문학을 전공하고 비평가로 활동해온 강동호, 조연정씨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독문학ㆍ사회학ㆍ영상학 전공자들이다. 금정연씨는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책 전반에 대한 서평을 쓴다. 강동호 평론가는 “문지가 문학주의에 갇혀 있다는 평가가 많은데 어떤 면에선 맞는 말이다. 문지 역사를 보면 계속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만 옹호한 게 아닌데도 어느덧 이데올로기처럼 돼 버린 게 사실”이라며 “영화ㆍ인문학 등 기타 인접 장르의 다양한 시선을 유입시켜 문학 해석의 폭을 넓히고 문학이 사회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또 “조심스럽지만 기존의 문지 세대가 고수하고 있던 문학에 대한 강고한 생각에도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지나간 작품이나 문학사에 대한 고찰도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문학판에서 새롭게 생성된 신작, 담론에만 집중하면서 90년대 특정 문예지 출신 밀어주기와 관련된 ‘문학권력’ 논쟁 등이 미봉합된 채 넘어가버렸고, 결국 이번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강 평론가는 “지금까진 (작품이나 사건을) 한 번 평가하고 다시 돌아보지 않는 식이어서 글의 생명력이 짧고 휘발성이 강했다”며 “작가 인터뷰를 하더라도 신간을 낸 작가가 아닌 문지에서 꼭 언급해야 할 사람 위주로 인터뷰를 해 아카이브를 만드는 식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흔히 주례사 비평으로 일컬어지는, ‘좋게 좋게’ 얘기해주는 비평에 대한 경계도 내비쳤다. 금정연씨는 “어떤 작품이 나왔을 때 크게 팔리지 않을 것이란 걸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작품의 흠결을 잡기보다는 좋게 얘기해주자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며 “그래서 발전적이지 않고 퇴행적인, 단순히 소개에 그치는 논의가 많은데,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런 부분들을 조금씩 해결해야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한국 문학이 어렵고 구질구질하고 골방에 갇혔다는 이미지가 강해졌다”며 “작품의 문제일 수도, 비평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한국 문학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작업이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지는 창간 40주년을 맞아 계간 ‘문학과지성’ 41호 복각본, 평론 선집 ‘한국문학의 가능성’, 문학평론가 김현의 일기를 모은 ‘행복한 책읽기’ 등 3종을 출간했다. 41호 복각본은 1980년 창간 10주년을 맞아 발행하려다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돼 교정지 형태로만 존재하다가 35년 만에 책으로 묶였다. 본문, 차례, 서체 등을 본래 모습 그대로 살려 만들었다.
‘한국문학의 가능성’은 1~4세대 문지 동인들의 평문을 모은 선집이다. ‘문학과지성’ 창간 당시 동인이었던 김현부터 가장 젊은 강동호까지, 총 21명의 신구 동인이 계간지에 실었던 글 중에서 한 편씩을 골랐다. 한국 현대문학의 역사를 문지의 논리에 따라 다시 살펴볼 수 있다.
‘행복한 책 읽기’는 김현 평론가가 1985년 12월 30일부터 1989년 12월 12일까지 만 4년 381일 동안 쓴 일기이자 유고다. 김현 문학의 밑그림에 해당하는 글들로, 1992년 초판이 간행된 이후 12월 현재 31쇄를 찍은 스테디 셀러다. 이번 개정판은 김현 25주기를 기념해 한국 북디자인의 산 증인인 정병규 북디자이너가 디자인을 맡았고, 연도별로 나뉜 각 부의 첫머리에는 김현의 자필 서안 4점을 옮겼다.
문학과지성사는 1975년 12월 12일 문을 열었다. 김현을 중심으로 ‘68문학’에 결집했던 비평가들이 1970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창간하며 다시 뭉쳤고 5년 후 창사로 이어졌다. 이후 네 번의 세대 교체를 거듭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인 체제를 고수하며 상업주의, 통속주의에 맞서 순수문학의 본거지 역할을 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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