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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토박이의 전라도울렁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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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토박이의 전라도울렁증

입력
2015.12.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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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광주대구 고속도로’ 확장개통으로 영호남 소통 기대

아시아문화전당에는 광주의 미래 엿보여

광주시민의숲에서 만난 대구의 자취 흐뭇

지역감정 개선에 찬물 끼얹는 정치가 문제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남대 미술학과 학생들이 달빛동맹의 영어 'MOON LIGHT UNION'을 들어보이고 있다. 구멍을 뚫어 글자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프린터했다.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남대 미술학과 학생들이 달빛동맹의 영어 'MOON LIGHT UNION'을 들어보이고 있다. 구멍을 뚫어 글자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프린터했다.

전라도 땅을 작심하고 밟은 것은 나이 오십되도록 처음이었다. 대구 토박이로 살면서 경조사와 송년회 등으로 휑하니 다녀온 적은 여러 번이지만 여행조차도 제대로 다녀보지 않은 곳이 이 땅이었다. 어릴 때는 몰라서, 철 들고는 막연한 거리감 때문이었다. 전국이 1일생활권이 됐다고 떠든 지가 수 십년 전이니, 100% 심리적 거리라고 보면 된다.

전라도는 한 달음 거리에 있었다. 22일 왕복 4차선으로 확장개통하는 ‘광주대구 고속도로’(구 88올림픽고속도로)를 따라 광주에 도착한 것은 지난 6일 오전 9시쯤이었다. 첫 방문지는 5ㆍ18민주묘지로 잡았다. 그게 이 도시에 대한 예의같았다. 망월동 구묘지 3묘역에 누워있는 이한열, 강경대 열사, 김남주 시인을 보니 잊고 살았던 시대의 아픔이 하나 둘씩 되살아났다.

망월동에서 광주의 과거를 봤다면 지난달 문을 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는 미래가 있었다. ‘승리’라는 조형물 옆의 문화창조원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볼거리로 넘쳐났다. ‘21C 대장경’ 프로젝트의 하나로 고려대장경을 새기고 있는 로봇 ‘피타카’, 미디어아트의 본질을 작은 공간에 펼친 ‘양아치’의 작품, 환상적인 ‘볼트’ 시리즈 등 기존 예술의 벽을 몇 개는 부숴버린 듯한 전위적 작품들로 꽉 차 있었다. 구멍을 뚫어 글자를 표현하는 프린터도 있었다. 영어만 지원하는 통에 달빛동맹을 ‘MOONLIGHT UNION’으로 프린트했다. 문화창조원에서 일하는 전남대 미술학과 4학년 이애경(24ㆍ여)씨는 “서로 다른 지역들이 연계하는 것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무등산을 뒤로 하고 난생 처음 찾은 전남 화순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길이 7m, 높이 4m, 무게 200톤짜리 세계 최대의 고인돌 등 무려 596기의 고인돌이 학계에 보고된 곳이다. 입구쪽 고인돌 10여 기만 보고 떠나려했더니 이곳을 관리하는 정현창씨가 불쑥 나타나 “차를 타고 5㎞만 들어가 보라”고 권했다. 그는 ‘전라도사투리사전’도 펴낸 역사문화 전문가였다. 고인돌이 도로 양쪽에 무더기로 조성된 그 곳을 보지 않고 스쳐갔더라면 억울할 뻔했다.

운주사 산허리에 누워있는 와불을 보고, 나주에 들러 가마솥에서 우려낸 곰탕 한 그릇 비우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나주 목사가 손님을 접대한 금성관을 둘러보고 함평, 무안을 거쳐 신안군으로 들어섰다. 다리로 연결된 신안 압해도로 들어가니 곳곳에 ‘천사의 섬’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섬이 1,004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목포에서는 유달산 허리를 돌아 목포해양대에서 목포대교의 일몰을 본 후 북항에서 세발낙지를 처음으로 먹어봤다. 가게 아주머니가 “사내가 워째 이것도 못먹어봤당가”라며 직접 나무젓가락에 낙지머리를 끼워 다리를 둘둘 말아줬다.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과 해남 땅끝마을, 장보고 장군이 청해진을 세운 완도의 장도, 강진의 다산초당과 영랑생가, 보성 차밭, 고흥의 우주발사전망대, 광양의 불고기를 끝으로 꼬박 4일간의 남도 기행을 일단락했다.

이번 남도 기행의 백미는 마음 속 ‘전라도 울렁증’을 걷어낸 것이다. 남도의 음식과 문화도 수준급이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가려운 곳을 미리 긁어주는 특성이 있었다.

50년 거리감은 영호남 갈등의 대표 도시였던 대구에 살고 있는 탓이 크겠지만, 세상은 이미 과거의 틀을 깨고 있었다. 대구와 광주는 이미 ‘달빛(달구벌-빛고을)동맹’ 을 결성해 2009년부터 지자체간 교류를 하고 있고, 경북과 전남도 종가음식과 남도음식, 신안 가거도와 울릉 독도간 끝섬을 잇고 있다. 광주시민의숲에 조성된 ‘대구-광주 교류협력 시민의 숲’에는 팔공산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낯선 도시에서 고향을 만나는 기분이란 야릇하고도 흐뭇했다.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지금껏 울렁증을 지워내지 못했던 꼴이 우습기도 했다.

한 여행객이 광주시민의숲 속에 조성된 '대구-광주 교류협력 시민의 숲'을 둘러보고 있다.
한 여행객이 광주시민의숲 속에 조성된 '대구-광주 교류협력 시민의 숲'을 둘러보고 있다.

이제 ‘광주대구 고속도로’ 확장개통으로 100분이면 양 도시가 이어진다. 새 도로명이 ‘달빛고속도로’가 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죽음의 도로’가 ‘소통의 도로’가 될 것은 분명하다. 울렁증도 옛말이 될 것이다.

대구로 돌아와보니 숙제 하나가 더 남았다. 4년마다 울렁증을 잠깨우는 총선 얘기다. 선거상황판을 보면 영호남은 서로 다른 색깔로 도배를 하고, 그걸 보는 사람들마다 혀를 찬다. 지역감정을 줄이기 위해 중대선거구제나 석패율 등이 거론됐지만 애당초 의지가 없는 정치권의 외면으로 물거품이 됐다. 정치인들의 밥그릇 지키기는 역시 대단했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관광객들이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 세워진 땅끝탑을 감상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 세워진 땅끝탑을 감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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