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 명사가 자주 등장하는 곳은 법정이다. 흔히 Leagal terms라는 법률 용어야 본래 따분하고 장황한 것이지만 기본적인 ‘말하기’나 ‘증거 기록의 낭독’에서 고유 명사의 발성도 간단치 않다. 1990년대에는 미국 법조계에서 ‘왜 법률 용어는 모호하고 장황한가’라는 문제제기가 나왔고 좀더 쉽게 재정립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쉽게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우선 이름의 발음법이 어떻게 어려운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Kim v. Park’같은 경우 피고 누구와 원고 누구 사이의 분쟁을 낭독할 때 ‘Kim vee Park’으로 읽는다. V는 versus의 줄임말로 소위 ‘법조계 관행 용어’(legal jargon)인데 미국에서는 vee라고 읽는 사례가 많지만 영국에서는 versus 나 ‘Kim against Park’에서처럼 against 라고 말한다. 캐나다에서는 v.를 and로 읽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vee라고 말한다.
‘사건 번호’(case number)를 다룰 때 등장하는 인명과 지명 등 기타 고유 명사는 시민 사회에서와는 다르게 읽혀지는 때가 있다. Schenck v. United States(1919)의 경우 ‘스켕크’로 읽느냐 ‘쉔크’로 읽느냐의 문제가 있었다. 사건 내막을 아는 법조인은 ‘쉔크’로 읽고 일반인은 ‘스켄크’라고 발음했다. Ake vs. Oklahoma 사건의 경우 별의별 발음이 나온다. ‘아키 비 오클라호마’가 있는가 하면 ‘아케’ ‘에이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양측의 변호사들이 변론(oral argument)에서 인용하는 발음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약칭과 줄임말을 쓰고 있어 방청객 입장에서는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New York Times같은 신문에서는 ‘City of Boerne v. Flores’ 사건을 다룰 때 도시명 Boerne를 (Bernie)라고 괄호처리하여 발음을 도운 적도 있다. Grutter v. Bollinger 사건의 경우 원고 Grutter 여성은 보통 ‘그루터’로 불리지만 법정에서 모두들 ‘그러터’로 발음하기 때문에 가족이나 주위에서 부르는 명칭과 달라지기도 한다.
법정에서는 판사가 고유 명사의 발음을 정확히 하려고 노력한다. 판사는 원고와 피고측 변호사와 발음법을 합의한 뒤 자기들 위주로 발음을 하는데 이는 일반 원어민 발음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는 각 고유명사의 발음법을 별도로 익히는 것이 관례다. 어떤 변호사는 사람들이 이름 Taliaferro 발음을 잘 하지 못하자 본인이 나서서 ‘Tolliver’처럼 발음해 달라고 요청했다. 통상 고유 명사의 발음이 어려울 경우 ‘How should I pronounce your name?’이라고 묻는 것이 좋다. Reagan 대통령도 취임 초기에 ‘리이건’으로 발음하는 기자들 앞에서 ‘레이건’으로 해 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다. 그리고 사건 번호에서 ‘357 U.S. 547 (1983)’는 뒤에서 두 자리씩 끊어 읽는 방식으로 ‘three fifty-seven U.S. five forty-seven (Nineteen eighty-three)처럼 읽는다. 그래도 잘 알 수 없다면 ‘How do you read this?’라고 물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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