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청바지로 책 바꿔 먹은 이야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청바지로 책 바꿔 먹은 이야기

입력
2015.12.14 19:34
0 0

청바지를 갖고 와 책으로 바꿔 읽는 이색 행사가 11~13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렸다. 이름하여 ‘노머니 책시장.’ 돈이 아닌 것으로 거래하는 책 시장이다. 누구나 헌책을 갖고 나와 팔고 사는 ‘한평 시민 책시장’을 해 온 서울도서관과 DDP 운영기관인 서울디자인재단이 주최했다. 청바지를 내고 받은 참가확인증은 바로 옆 평화시장 거리의 헌책방에서 무료로 책 2권을 구입할 수 있는 쿠폰이 됐다. 그 중 한 권은 노머니 책시장에 기부하는 조건이다. 청바지, 그리고 헌 책. 동대문 일대에 봉제공장이 몰려 있고 평화시장이 봉제공장 노동자 전태일과 헌책방 거리임에 초점을 맞춘 기획이다. 소박하지만 한 번만 하고 말기엔 아까운 재미있는 행사다. 첫날인 11일 대학생 인턴기자 둘이 현장을 다녀왔다.

그림 1노머니 책시장 입구의 환전소. 헌 청바지를 가져오면 책 구입권으로 바꿔준다. 종이봉투에 담긴 쌀을 사서 책으로 교환할 수도 있다. 한 봉지에 1,000원.
그림 1노머니 책시장 입구의 환전소. 헌 청바지를 가져오면 책 구입권으로 바꿔준다. 종이봉투에 담긴 쌀을 사서 책으로 교환할 수도 있다. 한 봉지에 1,000원.
청바지를 내고 받은 확인증. DDP 인근 청계천 헌책방에서 헌책 두 권을 무료 구입할 수 있는 쿠폰이다. 한 권은 노머니 책시장에 기부하는 조건.
청바지를 내고 받은 확인증. DDP 인근 청계천 헌책방에서 헌책 두 권을 무료 구입할 수 있는 쿠폰이다. 한 권은 노머니 책시장에 기부하는 조건.

DDP 배움터(M1)로 들어가니 곡선의 긴 통로를 따라 헌책 시장이 펼쳐져 있다. 구경에 앞서 ‘청계천 헌책방 가는 길’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가져간 청바지를 교환했다. 환전소는 입구에 있다. 청바지를 내니 헌책방에서 책을 살 수 있는 참가확인증을 준다. 서점 이름, 책 이름, 책 가격을 적는 난이 있는 노란 카드다. 청바지 대신 1,000원 주고 갈색 봉투에 담긴 쌀을 사서 책으로 교환할 수도 있다.

DDP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헌책방 거리. 청계천을 따라 난 대로변에 간간이 헌책방이 있다. 스무 개도 안 되는 것 같다. 1970~80년대만 해도 즐비했다던데, 한참 뒤에 태어난 우리에겐 낯설다.

난생 처음 가본 헌책방에서 횡재를 하다

두 군데를 들렀다. 헌책방이라곤 처음 가본 데다 좁은 공간에 책이 너무 많아 고르기가 힘들었다. 한 10분쯤 지나서야 적응이 되면서 책 제목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박완서, 공지영, 움베르토 에코, 밀란 쿤데라 등 유명 작가들의 책이 보였다. 책값이 너무 싸서 놀랐다. 가장자리가 누렇게 바래긴 했어도 낙서나 접힘 없이 깨끗한 소설 책이 2,000원, 딱딱한 표지의 두꺼운 책은 3,000원 정도. 사서 읽고 싶은 책이나 소장하고 싶던 책을 발견하면 횡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청계천 헌책방 풍경. 좁은 공간에 책이 꽉 들어찼다.
청계천 헌책방 풍경. 좁은 공간에 책이 꽉 들어찼다.

두 곳 모두 할아버지가 주인이었다. 도서관이나 일반 서점처럼 정리가 잘 돼 있진 않았지만, 어떤 책 고르냐고 계속 물어보고 책을 골라주기도 했다. 간간이 손님들이 들어왔다. 젊은 사람은 별로 없고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와서 이런 책 있냐고 묻곤 했다. 아저씨들은 주로 사전을 찾았고, 어떤 아주머니는 지혈법을 알려주는 책 등 실용서를 사 갔다. 사전은 1만 5,000~2만원가량에 팔리고 있었다. 두 번째로 들른 헌책방에는 새 책이나 다름없는 소지섭 사진집도 있었는데 가격은 단돈 3,000원. 사람 좋은 미소를 지닌 주인 할아버지는 소지섭 팬이라면 어디서도 이 가격에 살 수 없는 보물 같은 책이라며 웃었다. 우리는 노머니 환전소에서 청바지를 내고 받은 참가확인증으로 ‘걸리버 여행기’ ‘테스’ ‘여자의 일생’을 샀다.

뒹굴뎅굴 간식 먹으며 책 읽는 재미

산 책을 들고 다시 DDP로 향했다. 확인증을 노머니 책시장에 가져다 줘야 주최 측이 헌책방에 책값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인증으로 구입한 책 2권 중 한 권은 기부해야 한다. 우리는 ‘향수’를 기부했다. 이렇게 기부한 책은 책시장에 진열돼 다른 시민들이 읽을 수 있도록 공유된다.

노머니 책시장의 좌판. DDP 배움터의 실내공간 곡선 통로를 따라 장이 섰다.
노머니 책시장의 좌판. DDP 배움터의 실내공간 곡선 통로를 따라 장이 섰다.
책 좌판 끝에 큼직한 방석형 의자와 텐트가 늘어섰다. 편안하게 책 읽으라고 놓은 것이다.
책 좌판 끝에 큼직한 방석형 의자와 텐트가 늘어섰다. 편안하게 책 읽으라고 놓은 것이다.
요와 베개가 놓인 텐트 안에 들어가서 책을 보는 아이들.
요와 베개가 놓인 텐트 안에 들어가서 책을 보는 아이들.

헌책방에서 돌아와 둘러본 노머니 책시장은 구색을 갖추려고 노력했지만 책의 종류나 양이 부족했다. 공지영 신경숙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작가 위주이고 자기계발서, 어린이책이 많았다.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큼직한 의자형 방석과 작은 텐트를 여러 개 놓은 건 좋았다. 텐트는 누우면 2명, 앉으면 4명이 들어갈 만한 공간인데 푹신한 요와 베개가 깔렸다. 텐트 안에서 책을 읽다가 잠시 잠을 청하는 사람, 나란히 누워 책을 읽으며 얘기하는 커플도 볼 수 있었다. 좌판이 늘어선 책시장에 과자, 귤, 물 등을 파는 간식카트가 간간이 지나갔다. 품목마다 한 개에 200원. 우리는 귤과 과자를 샀다. 모두 합해 1,000원. 간식을 먹으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이 또한 재미가 되었다.

박규희 인턴기자(성신여대 국문과 4년)

유해린 인턴기자 (이화여대 국문과 3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