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사업가를 살해한 죄로 사형 집행 2년 유예 판결을 받았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그는 사형을 면한 대가로 남편의 뇌물 수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적극 협조했다. 현 국가주석인 시진핑(習近平)과 권력을 다투던 보 전 서기의 몰락으로 관심을 모았던 이 사건은 결국 정치 재판으로 귀결되고 있다.
14일 중국최고인민법원 인터넷 사이트에 따르면 베이징시고급인민법원은 지난달 구카이라이에 대한 감형 안건을 공시했다. 법원은 공고문을 통해 “형벌 집행기관이 구카이라이에 대해 수감 기간 고의 범죄 행위가 없었다며 사형 집행 2년 유예를 무기징역으로 감형해 줄 것을 2014년9월 건의했다”며 “만약 이 감형에 이의가 있다면 11월16~20일 의견서를 법정으로 제출하라”고 밝혔다. 베이징시고급인민법원이 공고를 낸 날은 11월16일이었다. 이미 감형 이의 제기 기간이 종료된 만큼 구카이라이에 대한 감형은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그러나 구카이라이에 대한 ‘정치 권리 종신 박탈’은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구카이라이가 현재 중국 고위층이 수감되는 옌청(燕城) 감옥에 수감돼 있다는 사실도 공고문을 통해 확인됐다.
구카이라이는 한 때 사업을 함께 한 영국인 닐 헤이우드와 경제적 갈등이 커지고 그가 자신의 아들을 위협할 것을 우려해, 2011년11월 그를 충칭의 한 호텔로 유인한 뒤 청산가리로 독살한 혐의로 2012년8월 사형 집행 2년 유예 형을 받았다.
구카이라이의 범행을 알게 된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은 이를 보 전 서기에게 보고했지만 오히려 면직을 당했다. 이후 왕 전 국장이 2012년2월 청두(成都)의 미국 총영사관으로 도피하며 사건의 전모가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차기 최고 지도부 진입을 노리던 실력자 보 전 서기는 결국 이 사건으로 낙마, 2013년9월 뇌물수수, 공금횡령, 직권남용 등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구카이라이는 보 전 서기의 뇌물 수수를 입증하는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
재판 과정에서 왕 전 국장이 구카이라이를 연모한 사실도 드러나며 세기의 재판은 한 순간 불륜 치정 드라마로 전락하기도 했다. 왕 전 국장은 반역도주 등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보 전 서기에게 뇌물을 건넨 쉬밍(徐明) 다롄스더(實德)그룹 회장도 징역 4년형을 받았으나 최근 감옥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형 집행 유예란 사형을 판결함과 동시에 그 집행을 2년간 유예한 뒤 죄수의 태도를 평가해 사형에 처하거나 무기 징역으로 감형하는 중국의 독특한 제도다. 그러나 사형 유예를 받은 뒤 사형집행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각에선 구카이라이가 결국 가석방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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