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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없는 영화공장… 빛과 소리 오염 완벽히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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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없는 영화공장… 빛과 소리 오염 완벽히 차단

입력
2015.12.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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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종합촬영소의 촬영 스튜디오. 사극 세트 뒤에 블루 스크린이 있어서 크로마키 효과를 통해 다른 장면을 합성해 넣을 수 있다. 이영준 교수 제공
남양주종합촬영소의 촬영 스튜디오. 사극 세트 뒤에 블루 스크린이 있어서 크로마키 효과를 통해 다른 장면을 합성해 넣을 수 있다. 이영준 교수 제공

촬영 스튜디오에 두터운 방음문

외부 소음 들어올 틈 없어

벽은 배경 합성 위해 파란색으로

영화의 공간은 딱 하나다. 영화관이 그것이다. 물론 요즘은 인터넷으로 영화를 다운 받아서 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스마트폰에 받아서 지하철에서 보기도 하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깜깜하고 닫혀 있는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남양주종합촬영소에 가보면 영화관보다 훨씬 다양한 영화의 공간들을 볼 수 있다. 각각의 공간들은 모양도, 구성도, 지켜야 하는 규칙들도 다르다. 무엇보다도 성질들이 다르다. 여기서는 일반인도 야외세트와 스튜디오를 볼 수 있는데 이번 취재에서는 그것들 외에 영화를 편집하는 스튜디오, 영화에 사운드를 입히는 믹싱 스테이지, 영화에 들어갈 대사를 더빙해 넣는 녹음실, 음향효과를 만들어내는 폴리 스튜디오를 가봤다. 결국 이런 이질적이고 다양한 공간들의 조화가 영화를 만들어내는 공장 노릇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질적인 장소들의 조화

강철을 만드는 공장과 콜라를 만드는 공장이 다른 구조와 규칙을 가지고 있듯이, 영화를 만드는 각각의 공장들도 다른 구조와 규칙을 가지고 있다. 촬영 스튜디오는 거대한 방이다. 이 안에 세트를 지어놓고 영화를 찍는데, 옛날에는 영화 전용 스튜디오가 없어서 창고를 빌려서 찍었다고 한다. 이 경우 소리가 문제가 된다. 창고는 방음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건물이 아니므로 온갖 잡음이 다 들어온다. 그래서 창고에서 찍은 영화를 해외 영화제에 내면 낯부끄러울 정도였다고 한다. 남양주종합촬영소에 있는 스튜디오는 1,000㎡(300평 정도)로 널찍하다. 필자가 찾아간 날은 궁궐의 큰 건물 하나만한 사극용 세트를 인부들이 만들고 있었다. 물론 세부 디자인이나 색깔은 철저히 고증을 거친 것들이다. 스튜디오에는 두터운 방음문이 달려 있어서 촬영 도중 외부의 소음이 들어올 일은 없다. 스튜디오의 벽은 파란색과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크로마키를 위한 블루 스크린 노릇을 해 준다. 크로마키란 배경에 다른 화면을 삽입하는 기술을 말 한다. 이 세상에 완전히 새파란 물건이 별로 없기 때문에 배경을 파란 색으로 칠해주고 나중에 그 파란 부분에 원하는 화면을 합성해 주면 두 가지 그림이 합쳐지는 효과가 난다. 어차피 영화라는 것이 시뮬레이션이긴 하지만 스튜디오는 좀 더 물질화된 시뮬레이션이다. 사극 세트를 만들어 놓고 조선시대라고 하니 말이다. 시뮬레이션에 익숙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다 알고도 속아주는 것 아닐까?

영상 파일 다루는 편집실

관객이 보는 느낌 살리려

필름 시절 암실처럼 깜깜하게 꾸며

찍은 필름 (모든 상영관이 디지털로 바뀐 요즘은 영상 파일)은 편집실로 넘어가서 편집된다. 옛날에는 필름을 일일이 손으로 잘라서 다시 붙이는 식으로 편집했지만 영화제작의 모든 과정이 디지털로 바뀐 요즘은 편집은 당연히 컴퓨터로 한다. 그런데 편집실은 캄캄했다. 실제 영화관의 상황을 설정해 놓고 편집해야 관객이 보는 느낌과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력 17년의 편집전문가는 17년을 암실에서 보낸 것이었다. 옛날에 화학 약품 써서 사진 뽑을 때 암실에서 작업했는데 21세기에도 여전히 암실이라니 이미지 기술의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보다.

믹싱 스테이지: 전쟁상황실을 닮은 이 방에서 영화에 소리가 입혀진다. 이영준 교수 제공
믹싱 스테이지: 전쟁상황실을 닮은 이 방에서 영화에 소리가 입혀진다. 이영준 교수 제공

그 다음은 믹싱 스테이지다. 영상에 들어갈 소리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곳이다. 이 방에서 어떤 장면에 어떤 소리를 넣을지 소리 전문가와 감독이 같이 상의하며 결정한다. 이곳은 앞에 영화가 비춰질 큰 스크린이 있고 관람용 소파들이 있고 그 뒤에 각종 모니터와 스위치들이 잔뜩 있는 모양이 꼭 전쟁상황실을 연상시키는 방이었다. 감독이 마치 전쟁의 지휘관처럼 소파에 앉아서 지시할 것 같은 방이다. 혹은 항공우주국의 로케트 발사 관제실을 닮았다. 아마도 영화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조직력과 물자의 보급, 시간과 원칙의 철저한 준수, 각자 맡은 역할을 해내기 위한 투쟁들로 돼 있기 때문에 전쟁상황실 같은 방에서 믹싱하는 것 같다. 이 방도 앞서 편집실처럼 상영관과 똑같은 모양으로 돼 있다. 스크린의 크기는 약간 작아 보이지만 그래도 꽤 커 보인다. 영화가 실제로 상영되는 상황에서 믹싱해야 하기 때문이다. 폴 비릴리오라는 사상가는 ‘전쟁과 영화’라는 책에서 현대에서는 전쟁이 영화의 기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나아가 전쟁이 영화가 된다고 했는데 설마 믹싱 스테이지를 보고 그렇게 쓴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방은 넓고 개방감이 있지만 뭔가 카리스마가 있는 영화감독이 지배할 것 같은 곳이다. 그러나 감독이 전적으로 소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믹싱 스테이지를 책임 지는 사운드 디자이너는 경험이 풍부해서 어떤 장면에 어떤 소리가, 혹은 침묵이 필요한지 알고 있어서 때로는 감독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조언하기도 한다. 옛날에 영화판에 군기가 셀 때는 경험이 적은 신인 감독은 믹싱 스테이지에서 경험 많은 사운드 전문가에게 휘둘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른바 ‘곤조’를 부리면 당했던 것이다. 요즘은 그런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녹음실이다. 배우가 영화를 보면서 입을 맞춰 대사를 녹음하고 있다. 이영준 교수 제공
녹음실이다. 배우가 영화를 보면서 입을 맞춰 대사를 녹음하고 있다. 이영준 교수 제공

침묵과 어둠이 필요한 작업

믹싱 스테이지로 가져올 소리를 만드는 스튜디오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녹음실이고 또 하나는 폴리 스튜디오다. 녹음실은 숨 막힐 듯 폐쇄돼 있는 방이다. 녹음실은 녹음용 컴퓨터와 모니터 스피커가 있는 부분과 녹음할 사람이 들어가서 마이크에 대고 말 하는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둘 사이는 절대로 소리가 못 건너가게 철저하게 차단돼 있다. 마이크가 있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니 질식감이 엄습해 온다. 완전히 폐쇄돼 있는 데다가 벽에는 방음재가 붙어 있어서 소리가 울리지 않으니 내 존재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편집실이 암실이었다면 여기는 소리의 암실이었다. 암실의 원칙은 ‘빛을 얻으려면 어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녹음실의 원칙은 ‘소리를 얻으려면 침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영화는 대부분 동시녹음으로 만들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후시 녹음으로 하기도 한다. 그러면 배우는 이 녹음실에 거의 한달 가까이 출퇴근하며 자신이 연기한 대사를 다 녹음해야 한다. 소리를 편집하는 데만 2개월이 걸린다고 하니 어둠 속에서 많은 것이 탄생하는 셈이다.

버려진 물건들로 채워진 창고가 아니다. 온갖 음향을 만들어내는 폴리 스튜디오의 모습이다. 저 잡동사니들이 음향용 소품으로 쓰인다. 이영준 교수 제공
버려진 물건들로 채워진 창고가 아니다. 온갖 음향을 만들어내는 폴리 스튜디오의 모습이다. 저 잡동사니들이 음향용 소품으로 쓰인다. 이영준 교수 제공

효과음 만드는 폴리 스튜디오

임기응변ㆍ창의력의 공간

총소리도 여러 번 섞어야 실감 나

폴리 스튜디오는 온갖 종류의 음향들을 만드는 곳인데, 폴리라는 말은 미국인 잭 도노번 폴 리가 1914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처음으로 이런 음향 만드는 스튜디오를 만들어 쓰고 나서 생긴 이름이다. 이곳에서 갖가지 음향을 만드는 사람을 폴리 아티스트라고 하는데 아마 남양주종합촬영소 전체에서 아티스트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은 이 분 밖에 없을 것 같다. 앞서 본 방들이 폐쇄, 차단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폴리 스튜디오는 엄청나게 지저분하고 잡다한 창고다. 영화에 수많은 다양한 소리들이 나오는데 그것들을 재현해 내려면 온갖 물건들이 필요해서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이유는 임기응변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영화의 소리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총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총의 노리쇠 작동음을 낼 수가 없다. 문손잡이틀에 달린 손잡이를 비틀자 노리쇠를 후퇴전진 시키는 듯한 소리가 난다. 폴리 스튜디오에서 재미 있는 점은 우리가 영화에서 듣는 많은 소리들은 가상의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눈 위를 걷는 장면을 위한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겨울이 아니라면 눈이 없으므로 불가능하다. 이때는 소금을 뿌려놓고 그 위를 밟아서 눈 소리를 내는데, 눈이 거칠면 굵은 소금, 고우면 고운 소금을 쓴다. 실제 권총 쏘는 소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데 영화에서 권총 쏘는 장면은 전개가 극적으로 꺾이는 부분이기 때문에 약하게 나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실제의 총소리는 외국에서 수입한 소리 라이브러리의 것을 가져다 쓴다. 온갖 총들의 소리들이 다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리도 ‘블렌딩’(blending)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총소리 하나도 이 소리 저 소리 섞어야 그럴싸한 총소리가 나기 때문에 블렌딩한다(실제 그런 용어를 쓰지는 않음). 폴리 스튜디오에는 도대체 이런 물건이 왜 필요할까 싶은 온갖 것들이 있다. 지푸라기에서부터 구닥다리 휴대폰, 지폐까지 없는 것이 없다. 오래된 휴대폰이 필요한 이유는 영화 속에 옛날 휴대폰 벨이 울리는 장면이 나오면 그 벨소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스태프가 폴리 스튜디오에서 소금을 밟아 눈 밟는 소리를 내고 있다. 이영준 교수 제공
한 스태프가 폴리 스튜디오에서 소금을 밟아 눈 밟는 소리를 내고 있다. 이영준 교수 제공

굴뚝산업 못지않은 노동의 결실

소리를 다루는 스튜디오들에는 당연히 두텁고 무거운 방음문이 달려 있다. 담당자에게 평소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어봤다. 만일 바깥에서 예를 들어 폭탄이 터지는 등 아주 큰 소음이 나도 저 문들이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필자가 이런 우문을 던진 데는 이유가 있다. 필자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당시 길거리에서 데모가 일어나면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일이 많았고 그때 아주 큰 폭음이 났다. 그런데 어느 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외국의 오케스트라가 내한공연을 할 때 공연장 바깥에서 시위가 있었고 최루탄이 터졌다. 그 때 과연 세종문화회관이 그런 폭음을 철저히 차단할 수 있는지 궁금했었다.

남양주종합촬영소의 사운드 스튜디오는 외부의 어떤 소리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우선 외부에서 스튜디오까지 가려면 3중의 방음문을 거쳐야 한다. 그 중 하나도 만만한 문이 없다. 그리고 모든 스튜디오들은 바닥에서 띄워진 상태로 지어져 있다. 소리를 차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방을 공간 한가운데 띄워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벽의 두께가 일반적인 벽의 두 배가 넘는다. 완벽한 소리의 암실이었다.

폴리 스튜디오에서 쓰는 구닥다리 휴대폰. 이 벨소리는 여기서 밖에 안 나기 때문에 이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영준 교수 제공
폴리 스튜디오에서 쓰는 구닥다리 휴대폰. 이 벨소리는 여기서 밖에 안 나기 때문에 이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영준 교수 제공

예전에 어느 대통령이 현대자동차가 1년 판매량으로 번 돈을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벌어들인다며 영화산업을 진흥해야 한다고 했다. 굴뚝 없는 산업이 돈을 잘 벌어들이니 우리도 그런 것을 육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기억이 난다. 그 분은 굴뚝 없는 산업인 영화가 굴뚝 있는 산업만큼 수 많은 사람들의 노고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 공장은 수 많은 다른 원칙들과 노하우가 필요한 다양한 공간들로 돼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까? 필자가 남양주종합촬영소를 둘러보고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알게 돼 다행이었다.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

이영준 계원예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영준 계원예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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