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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여론조사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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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여론조사의 함정

입력
2015.12.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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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에 의아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뚜렷한 성과가 없는데도 40%대의 견고한 지지율은 콘크리트 지지층 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한다. 첫째는 응답 항목의 문제다. ‘매우 잘함’‘잘하는 편’‘잘못하는 편’‘매우 잘못’등 ‘4점 척도’가 일반적인데 애매한 답이 상당수다. “보통”“글쎄” “그저 그렇지”같은 경우로 대개 긍정으로 간주된다. 화이트칼라나 저연령층보다는 대통령 지지율이 강한 편인 고연령층, 주부, 자영업자 등의 응답률이 높은 점도 맹점이다. 가중치 부여 등의 보정을 하지만 한계가 있다.

▦ 여론조사는 표본과 질문 구성, 조사방식에 따라 편차가 크다. 과학보다는 예술에 가깝다는 전문가들도 많다. 하다못해 응답 문항의 순서도 다른 결과를 낳는다. 박 대통령 선호를 물을 때 ‘매우 좋아한다’와 ‘매우 싫어한다’중 어느 것을 맨 앞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대답이 차이가 난다. 여론조사에서 말하는 ‘초두(初頭) 효과’다. 조사 기법상의 한계가 이럴진대 의도가 개입되면 왜곡과 조작은 식은 죽 먹기다.

▦ 미국에서 한 대중잡지가 “특수 이익집단이 후보에게 어마어마한 선거자금을 제공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응답자의 감정을 자극해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의도는 그대로 적중해 99%가 찬성했다. 과거 통일부에서 “최근 북한이 남한을 계속 비난하는데, 정부가 북한에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는 게 좋겠냐”고 물은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엉터리 조사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 최근 고용노동부가 기간제법 개편 여론을 물었는데 2년 뒤 정규직으로 채용토록 돼있는 현행법 내용은 빼고 비정규직 기간 4년 연장에 찬성하느냐고 질문했다. 질문을 교묘히 왜곡해 놓고는 72%가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85% 찬성이 나온 사법시험 존치 여부 설문조사는 ‘사시는 누구나 응시기회가 부여되고 로스쿨은 성과가 불확실하다’는 유도성 설명이 나열돼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의 근거로 삼았던 여론조사 설문은 현행 검정교과서의 문제점을 서술한 뒤 질문했다. 민의 왜곡은 국정운영에 차질을 주고 정부의 신뢰도 추락하게 만든다. 여론조사의 생명은 진실성과 정확성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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