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 바닷가 마을에 세 자매가 산다. 아버지는 사랑에 눈이 멀어 일찌감치 집을 떠났고, 어머니도 아이들을 멀리하고 해외에 살고 있다. 부모 없이 집을 지키며 자란 세 자매는 구김이 없다. 서로의 외모를 시기하기도 하고 못난 성격을 타박하면서도 별 탈 없이 지내던 자매들에게 어느 날 먼 곳에 살던 아버지의 부고가 전해진다. 별다른 교감이 없던 아버지이기에 지인의 상가 들르듯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은 세 자매는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피붙이와 첫 대면을 한다. 자매는 정 붙일 곳 없는 이복동생 스즈를 데려와 함께 살기로 마음 먹고 영화는 이후 이들 자매 사이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일들을 바라보듯 전한다.
존재조차 몰랐던 이복동생이 집안에 들어오면서 세 자매의 일상에 폭풍이 일까. ‘일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거센 감정의 진폭이 주조를 이루지 않는다. 언니들은 스즈가 혹시나 기가 죽을까 말조심을 하고, 스즈는 하루아침에 생긴 세 언니들의 눈치를 보나 일상에 감정의 지진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영화는 네 자매의 사랑과 직장 생활과 학교 생활 등을 주로 비춘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의 풍경과 그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인정을 그려내며 훈기를 일으킨다. 바닷가 풍광을 배경으로 별거 아닌 감정의 벽돌을 차분차분 쌓아 올리며 단아한 감동을 구축한다. 언니들의 보호 속에 어려움 없이 자라는 스즈에 감정이입하며 관객은 치유의 순간을 맞이한다.
갈등도 있고 위기도 닥친다. 해외로 함께 떠나자는 애인의 권유에 고민하는 첫째 사치(아야세 하루카), 남자들에게 마음을 뺏기고 매번 돈까지 뜯기는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의 수난 등이 자매들로만 이뤄진 가족에 풍파를 일으킨다. 어느 날 문득 세 자매의 어머니가 나타나 보금자리를 팔겠다고 주장하면서 네 자매가 일군 작은 공동체는 와해 직전에 이른다.
감독은 일본 예술영화의 대표주자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4)로 국내에서도 꽤 두툼한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아마 그의 팬이라면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며 2004년 14세 아역 배우 야기라 유야에게 칸국제영화제 최연소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안겨줬던 ‘아무도 모른다’(2004)를 떠올릴 만하다. 요시다 아카미의 동명원작 만화를 밑그림으로 삼은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무책임한 부모를 둔 탓에 차가운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아무도 모른다’ 속 어린 네 남매의 행복한 후일담과도 같다. 마음에 상처를 주면서도 종국엔 살아갈 힘을 주는 영화 속 가족의 이중적인 면모가 관객의 가슴을 치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연속선상에서 이 영화를 봐도 무방할 듯하다. 고레에다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낳은 정을 넘어서는 기른 정의 끈끈함을 설파하며 2011년 도호쿠 대지진 이후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를 은유적으로 비판했다. 핏줄보다는 사람들의 정리와 관계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고레에다는 생면부지의 이복동생을 받아들인 세 자매의 동정을 통해 역설한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17일 개봉, 12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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