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해외 석학 칼럼] 노동의 진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해외 석학 칼럼] 노동의 진화

입력
2015.12.13 09:48
0 0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노동자들.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노동자들. AP연합뉴스

유엔은 매년 12월 중순 인간개발보고서 최신판을 내놓는다. 올해 보고서는 노동의 본질에 초점을 둔다.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이 경제의 세계화, 새로운 기술 그리고 사회 조직 내의 혁신에 의해 어떻게 완전히 바뀌는지를 다룬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대한 전망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노동이라는 시간의 대부분은 대체로 즐겁지 못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가 부유해지려면 등골 빠지게 일해야 한다. 그리고 즐겁게 일 할 기회를 얻으려면 부자가 돼야 한다. 산업혁명 덕분에 면방직, 철강 그리고 운송 분야의 새로운 기술은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 생산성을 꾸준히 끌어올렸다. 사람들은 늘어나는 공장 노동 수요를 채우기 위해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런 현상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먼저, 이어서 서유럽과 북미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수십 년간 노동자들은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들은 숨막힐 듯 답답한 환경에서 장시간 일했고 콩나물시루 같고 비위생적인 주택에서 살았다. 소득은 거의 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평균 키 같은 일부 지표들은 삶의 수준이 심지어 얼마간 떨어졌을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결국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변형시켜 이득을 더 넓게 분배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한 가지 이유는 남아돌던 시골 노동자가 부족해지면서 임금이 자연스럽게 올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도 또한 중요하다. 혁명이 일어날까 두려워한 기업가들은 타협했다.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는 노동자 계층까지 확장됐다.

민주주의는 차례차례 자본주의를 더욱 길들여 나갔다. 국가의 명령이나 협상을 통해 만들어진 조정안으로 노동시간이 감소하고 안전이 강화되고 가족, 건강 등 다른 혜택이 늘어나면서 고용 조건은 개선됐다. 교육과 훈련에 대한 공공 투자 덕에 노동자들은 더욱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고 더 자유롭게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기업이 낸 흑자에 대한 노동의 몫이 올랐다. 공장 일이 결코 즐거워지지는 않았지만 육체 노동을 통해 소비나 생활 방식에서 중산층 같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산업자본주의를 갉아먹었다. 제조업에서 노동 생산성은 다른 경제 분야에 비해 훨씬 빠르게 상승했다. 철강, 자동차 그리고 전자 부문에선 훨씬 적은 노동자로도 이전과 같거나 그보다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남아도는 노동자들은 교육, 건강, 금융, 연예 그리고 행정 같은 서비스 산업으로 옮겨갔다. 이렇게 탈산업화 경제가 탄생했다.

노동은 일부에게는 점점 더 즐거운 것이 됐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건 아니었다. 탈산업화 시대에 번창할 수 있는 기술, 자본 그리고 지식을 갖춘 사람들에게 서비스업 내부의 기회는 넘쳐났다. 은행가, 컨설턴트 그리고 엔지니어는 산업화 시대에 같은 일을 했던 이들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다. 공장 노동에선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일정 정도의 자유와 개인적 자율성이 사무실 노동에서 가능해졌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장시간(아마도 공장 노동보다 더 긴) 노동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업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일상 생활과 업무 현장 선택권이 더 커졌다. 그들만큼 급여를 받진 못했지만 교사, 간호사, 종업원 역시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단조롭고 힘든 일에서 해방됐다.

그러나 덜 숙련된 노동자들에게 서비스 부문 직업이란 산업자본주의에서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혜택의 포기를 의미했다. 서비스 경제로 옮겨가면서 노조는 위축되고 고용 보호와 임금 형평성 규범은 쇠퇴됐으며 노동자의 교섭권과 고용 보장도 크게 약화됐다. 탈산업화 경제로 바뀌면서 노동 시장에는 안정적이고 높은 임금과 성취감을 주는 서비스 직업과 불안정하고 낮은 임금을 주는 불만족스러운 직업 사이에 깊은 골이 생겨났다. 직업의 비중과 탈산업화 경제로 이행하면서 생긴 불평등의 정도를 결정하는 요인은 두 가지였다. 교육 및 숙련도, 그리고 서비스업(제조업에 더해)에서 노동 시장의 제도화 정도이다.

기술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많은 서비스 업종이 현물시장의 교과서적 ‘이상’과 근접한 나라에서 불평등, 배타성, 이중성은 더욱 뚜렷해졌다. 많은 노동자들이 충분한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져야 하는 미국은 이 모델의 정전이라 할 만하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수입이 낮거나 중간인 나라에서 살고 있고 아직 이런 변화를 겪지 않았다. 그들이 같은 길을 걷지 않을 것이라고 (또는 그럴 필요가 있다고)믿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안전한 노동 환경, 단체 결사의 자유, 단체 교섭이 역사에서 봤던 것보다 더 이른 단계에 주어져서 안 될 이유가 없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소득 오르는 걸 기다릴 필요가 없듯이 강력한 노동 기준도 경제적 발전을 따라가야 할 필요가 없다. 임금이 낮은 국가의 노동자들이 산업 발전과 수출 실적 때문에 기본권을 빼앗겨선 안 된다.

둘째로 세계화와 기술 진보 때문에 제조업에서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들이나 그에 앞선 유럽과 북미 국가들의 산업화 경험을 따라 하기 매우 어려워졌다. 많은(대부분은 아니더라도) 개도국은 덩치 큰 제조업 분야를 발전시키지 않은 채 서비스 경제 중심의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그 과정을 나는 ‘조기 탈산업화’라고 불러왔다.

개도국 노동자들은 ‘조기 탈산업화’로 제조업의 지루하고 힘든 일을 건너뛰어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뜻밖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나로서는 그런 미래가 어떻게 가능할지 알기 힘들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가게 주인이거나 독립적인 전문직 종사자이거나 예술가 같은 자영업자이고 충분한 소득을 올리며 스스로 고용 조건을 결정하는 사회는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이미 아주 높을 때만 실현 가능하다. IT나 금융 같은 고생산성의 서비스 업종은 가난한 나라에 넘치도록 많은 미숙련 노동자가 아니라 잘 숙련된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개도국의 노동의 미래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둘 다 있다. 사회 정책과 노동권 덕분에 노동자들은 경제 발전의 아주 초기 단계부터 온전한 이해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다. 동시에 경제 발전의 전통적인 엔진인 산업화는 아주 낮은 능력으로도 가능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느 개도국이든 대중의 높은 기대치와 낮은 소득 생산 능력의 이 같은 공존이 중요한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 교수ㆍ경제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