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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디턴이 불평등을 옹호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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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디턴이 불평등을 옹호했다고?

입력
2015.12.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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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지난 10월 미국의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69)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선 이상하게도 디턴의 수상을 놓고 ‘성장이냐 분배냐’논란으로 번졌습니다. 일부 언론들이 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이번 노벨상 선정이 불평등 해소를 주장하는 분배론자보다 성장론자의 손을 들어줬다’고 주장한 것이 발단이 됐는데요. 이후 학계 일각에서 한 경제지가 디턴의 저서를 번역하면서 제목은 물론 일부 내용도 왜곡ㆍ누락했다는 의혹을 제기되면서 논쟁이 불거진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 최근 홍우형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월간 재정포럼’에 ‘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의 업적 바로 보기’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국책연구기관 소속 연구자가 이 같은 디턴 논란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홍 부연구위원은 이 글에서 “디턴의 업적을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전인수 격의 해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수상이 발표되자, 일부 국내 언론은 그가 ‘불평등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신자본론자의 대표로 프랑스 파리 대학의 토마스 피케티 교수, 그리고 신자유론의 대표로 앵거스 디턴 교수라는 이분법적인 대결 구도를 조장하며 이번 노벨 경제학상 선정이 불평등의 해소를 주장하는 분배론자보다는 경제성장을 우선으로 하는 성장론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해석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는 것이 그가 내놓은 평가입니다.

그는 그러면서 한 언론사가 번역한 디턴의 저서가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했습니다. 디턴의 저서인 ‘The Great Escape: 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는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위대한 탈출: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인데, 해당 언론사가 ‘위대한 탈출: 불평등은 어떻게 경제성장을 촉발시키나’라는 제목으로 번역을 한 것부터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는 “필자는 이런 의문점을 가지고 국내 번역본을 읽어보았으나, 그의 저서 어디에서도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촉진했다는 주장은 찾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홍 부연구위원은 그러면서 “오히려 그는 이 저서를 통해 경제성장을 통해 나타난 국가 간 혹은 국가 내 불평등이라는 부산물이 결국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이에 대한 슬기로운 해결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디턴이 불평등을 경제성장의 필요조건으로 정당화하는 대목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겁니다. (참고로 해당 책은 논란이 된 부분을 삭제하고 재출간됐습니다.)

특히 홍 부연구위원은 학계에서 디턴의 주요 업적으로 꼽는 것이 결코 불평등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소비, 빈곤, 후생’에 대한 그의 연구 업적을 이유로 그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다고 밝혔으며, 그 어디서도 ‘불평등’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건데요.

그러면 학계에서 인정하는 그의 대표적 업적은 뭘까요. 홍 부연구위원은 디턴의 업적으로 ▦새로운 수요체계 구상 ▦‘디턴의 역설’과 미시적 접근의 필요성 강조 ▦개발도상국 내에서의 후생 등을 꼽았습니다. 요컨대, 디턴은 수요공급곡선 같은 매끈한 논리가 대접받는 경제학계에서 미시적 자료를 통한 경제학적 접근을 시도한, 보기 드문 경제학자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겁니다.

‘불평등’에 대한 디턴의 입장은 뭘까요. 그의 연구 업적과 저서 등을 감안하면 그것이 경제지 등에서 말하는 불평등의 정당화는 아닐 거라는 게 홍 부연구위원의 추정입니다. 그는 “디턴의 입장은 불평등 문제에 대해 개별 국가들의 국가 구조와 산업 특성에 대한 미시적 접근(자세히 살펴보기)이 선행돼야 하며, 경제성장과 불평등 사이의 균형적 시각을 갖고 가장 효율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추측한다”고 썼습니다.

홍 부연구위원은 불평등이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매우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라고 지적하면서 “건전한 논의를 활성화하고 그 대책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언론의 이슈 만들기에 편승해 외국 학자의 주장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현재 실정이며, 디턴은 이런 과정에서 ‘희생양’이 됐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홍 부연구위원의 말이 맞다면 일부 언론은 정론직필은커녕 대놓고 ‘곡학아세’(曲學阿世)를 한 셈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곡학아세에 앞장선 언론사뿐 아니라, 곡학아세를 보고도 곡학아세인 줄 몰랐던 언론사 또는 언론인들도 물론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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