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도가 생명인 우유업계에 부패로 인한 악취가 진동합니다. 도를 넘어 한계에 다다른 최고경영진의 부도덕한 ‘갑(甲)질’ 비리는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졌습니다. 국내 우유업계 1,2위 업체인 서울우유와 매일유업 수뇌부 이야기입니다.
썩은 냄새의 진원지는 검찰에서 찾아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이동영(62) 전 서울우유 상임이사는 우유용기 납품업체로부터 “불량품이 나와도 무마해주겠다”며 2010년부터 올해 5월까지 8,500만원을 받았답니다. 상임이사는 조합장 대신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김정석(56) 전 매일유업 부회장의 비리에선 더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김 전 부회장은 2008년1월부터 올해 11월까지 매일유업 납품 업체들에게 자신이 세운 회사를 통해 우유용기 납품을 강요했고 이 과정에서 48억원 상당의 회사 수익금을 빼돌려 유흥비 등으로 탕진했답니다. 김 전 부회장은 매일유업 3대 주주이자, 고 김복용 창업주의 차남이란 점을 악용하면서 사실상 ‘통행세’를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 “실질적인 압력을 행사한 정황은 없지만 오너 일가라는 이유만으로도 납품업체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검찰의 설명 없이도 짐작은 가고도 남습니다.
최근까지 우유 소비량 급감으로 우유업계가 고사 위기에 몰렸다고 외쳐대는 사이, 경영진은 뒤에서 몰래 납품업체 고혈을 빨아 자신들의 배만 불린 셈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사태의 공통점이 모두 ‘갑질’에서 비롯된 것처럼 양 사의 대처방안도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양 사는 공히 도의적인 책임은 인정한다고 밝히면서도 본질은 피해가려는 모양새입니다. “내부에서나 외부에서 감사를 받고 있지만 계좌추적 같은 권한도 없어서 이번 사태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을 겁니다”(서울우유), “이번 사태는 지금 회장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매일유업)라고 강조합니다. 한 마디로 ‘이번 사태를 물리적으로 막을 순 없었고, 더구나 현 경영진과는 상관 없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말라’는 꼬리 자르기 식의 대응으로 읽힙니다. 당장의 비난의 화살만 피해가려는 듯한 모습에서 씁쓸함마저 전해옵니다.
그런데 과연 꼬리를 자른다고 이미 몸통에 전염됐을 수도, 앞으로 전염될지도 모를 비린내 나는 갑질 횡포를 차단할 수 있을까요. 혹시 그 동안 불량 용기를 사용해 유통기한에 문제가 생긴 우유는 출하되진 않았는지, 생산 시스템을 먼저 점검해봐야 되진 않을까요. 이번 비리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검찰의 발표를 제대로 따져봐야 되진 않을까요. 고장 난 지 오래된 내부 감사나 사외이사 제도 같은 윤리경영 시스템을 처음부터 확 뜯어 고치는 일을 서둘러야 되진 않을까요. 범행 가담자들이 금품의 대부분을 쉽게 추적이 가능한 수표로 전달 받았을 만큼 죄의식 없이 비리에 가담했다는 데, 유명무실하게 진행했던 정신 교육 강화 방침부터 찾아야 되진 않을까요. 국민들은 더 이상 역겨운 우유업계 소식을 듣고 싶진 않을테니까요. 허재경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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