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지 25년이 됐지만 그가 없는 현실이 새삼 한탄스러웠다. 전태일 평전의 저자이자 인권변호사의 상징인 고(故) 조영래(1947년 3월26일 ~ 1990년 12월12일) 변호사의 25주기를 맞아 11일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 주최로 기념 행사가 열렸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천정배 무소속 의원 등이 참여했고, 고인과 인연이 있는 18명의 회고담이 담긴 인터뷰 영상이 상영됐다. 야권뿐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 직원, 그리고 보수성향 언론인까지 그를 그리워하고 회고하는 자리였다.
1982년 3월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조 변호사는 1990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부천서 성고문 사건, 망원동 수재(水災)사건, 여성 조기정년 사건, 상봉동 진폐증 사건 등을 담당하며 노동 인권 여성 환경 분야의 공익 소송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 받는다. 서울대 전체 수석으로 입학한 후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등 시국사건에 연루돼 수감생활과 수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의원은 “1977년 어머니(고 이소선 여사)가 처음 구속됐을 때 조 변호사님이 ‘옥바라지에 필요할 거다’라면서 결혼 예물로 보이는 반지와 목걸이를 주셨던 게 지금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우리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사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지금 우리의 현실은 조 변호사님이 제 곁에 계셨던 70,80년대보다 더 나쁜 시간으로 회귀하는 것 같다”며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평생 애쓰신 그 뜻을 조금이라도 이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동영상 메시지에서 “1988년 11월 13일 전태일 동지의 기일에서 당시 민종덕(추모)위원장이 조 변호사가 전태일 평전의 저자라고 처음 공개했는데, 일정을 마친 후 조 변호사가 ‘종덕이가 말해버리는 바람에 쑥스러워서 혼났다’고 하더라”며 “몇 년을 같이 일했는데 (조 변호사가 저자라는 걸) 그 날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수배시절 집필했던 관계로 초판 출판 당시 저자의 이름을 밝힐 수 없었지만 전태일 평전이 ‘노동운동의 바이블’로 꼽히던 때에도 조 변호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저자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보수언론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도 동영상을 통해 “조 변호사는 겸손한 천재였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해 본 사람, 약자들의 애환과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며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그 추진하는 방법에도 온건함과 합리적인 사고를 갖췄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의 사무실 사무원이던 정향아씨는“직원들의 이야기도 하나도 거르지 않고 모두 듣고 받아주시는 분이었다”거 회고했다.
특히 조 변호사와 사법연수원 동기(12기)였던 문재인 대표, 박원순 시장의 감회는 남달랐다. 조 변호사는 1971년 사시에 합격했지만 수감, 수배 생활로 인해 연수원 수료가 늦었다. 문 대표는 “엄혹한 시대가 만들어 준 운명으로 조 변호사와 사법연수원 동기가 됐고 제가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셨다”며 “시대가 어려워질수록 조 변호사의 부재가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12월 12일이 현대사에서 안타까운 날로 기억되는 것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서이기도 하지만 이날 조 변호사가 43세의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박 시장은 “변호사를 그만두고 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는 (조 변호사의) 그 유언을 받아 37세에 처음으로 외국으로 나갔고 돌아와 시민운동을 시작했다”며 “조 변호사는 연수원 시절부터 피의자나 청구인 가족들에게 친절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진 자의 우월감을 나타내거나 상대방을 위축시키고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다짐하고 실천했다”고 회상했다. 박 시장은 “지금 세상이 흐리고 희망이 가물가물해져 미래가 어둡다. 어려운 시대, 그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천정배 의원은 “같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던 시절 조 변호사가 1988년 당시 초선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5공 청문회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대통령이 됐으면 좋을 만한 정치인이 있다’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변회는 조 변호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김진 변호사(연수원 28기), 권두섭 변호사(연수원 29기)에게 제1회 조영래상을 수여했다. 기념식 후 서울변회는 서울변호사 회관 앞에서 조 변호사의 흉상 제막식을 가졌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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