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쇼쇼쇼
스티븐 풀 지음ㆍ정서진 옮김
따비 발행ㆍ288쪽ㆍ1만5,000원
바야흐로 탐식의 시대다. ‘쿡방’과 ‘먹방’ 없이는 TV편성표나 흥행 프로그램을 논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요리사들의 현란한 손목 스냅에 정신을 빼앗기고 먹성 좋은 유명인의 과식에 침을 흘린다. 채널을 돌려봐도 이내 시골에 간 배우가 생선을 낚아 올리고 손질하고 튀기고 먹기까지의 자초지종에 열광한다. ‘튀기는 것은 뭐든 옳다’는 자막의 위트에 감탄하며 무릎을 친다. 그렇고 말고! 우리, 왜 이러는 거야?
‘미식 쇼쇼쇼’(따비)는 우리 의식 깊은 곳에 침투한 음식에 대한 탐닉에 물음표를 내미는 책이다. 저자 스티븐 풀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 ‘인디펜던트’ 등에서 활동하는 칼럼니스트다. 그는 먹방, 쿡방, 라이브 요리쇼의 인기로 대변되는 미식 열풍이 영국 전역을 휩쓰는 상황을 조목조목 불러내 들여다본다. “음식의 시대”에서 한 발짝 물러난 그가 펼쳐 보이는 탐식의 광기는 새삼 낯부끄러울 정도다.
“제이미 올리버가 출연한 무대를 목격했다는 이는 기가 막힌다는 듯 현장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앞에 있던 여자애들은 이미 아이폰을 들고 있고. 내 앞에 한 무리는 ‘오마이갓 오마이갓 오마이갓’을 연발한다. 실신 직전의 여자애는 ‘사랑해요, 제이미!’라고 소리친다.”
그는 음식의 준비와 소비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 즉 푸디즘(foodism)과 그 추종자인 푸디스트(foodist)들의 탐닉을 퇴폐나 기행의 한 유형으로 본다. “먹는 걸 즐기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물론 즐겨도 된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탐식을 성애화해서 표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한눈에도 절박한 보상 심리처럼 보인다.”
저자는 이 같은 푸디즘의 그늘이 만드는 사유와 사색의 공백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더 이상 정치가나 성직자를 신뢰하지 않는 대신” 요리사만을 신봉하고 떠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라는 명제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요리사들이 우리에게 먹는 방식은 물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말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지적한다.
숱한 철학 논고를 인용하는 저자는 현 사태가 “음식 애호가들의 쾌락의 신전에서 음식은 마약을 대신”하며 “음식만이 광적인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마음껏 빠져도 지탄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음식이 “더 안전하면서도 남부끄럽지 않은 쾌락의 수단이자 편안하게 길들여진 도취로 향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우리 사정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유쾌한 듯 삐딱한 저자의 투덜거림이 사뭇 불편하다가도 적잖은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가 푸디스트들을 향해 묻고 외치는 말에 가슴이 뜨끔하다. “이 모든 것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은 아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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