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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리포트] “고마워 심형탁” 키덜트 감격시대

입력
2015.12.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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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 이미지 타격 위험 감수하며 ‘덕밍아웃’

가족들 못마땅해 하는 취미를 대중은 이해해줘

“덕후는 술값을 취미에 투자하는 건강한 문화인”

일본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에 빠져있는 배우 심형탁. 심형탁 인스타그램
일본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에 빠져있는 배우 심형탁. 심형탁 인스타그램

# 경기도 일산에 사는 김봉하(46)씨는 7년차 '피규어 덕후'다. 보유하고 있는 피규어만 2,000개 이상으로 비용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다. 동호회 '오즈의 초합금 창고' 회장인 그는 종종 오프라인 정모를 추진하는데, 최근엔 셰프 최현석이 참석해 회원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 서울 양천구에 사는 옥태석(37)씨는 대학교 때인 2002년 애니메이션 동호회를 꾸렸다. 초반엔 온라인 카페에 리뷰를 게재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게임, 코스프레 등의 정보를 공유하는 동호회로 성장했다. 온라인 회원 수는 10만명에 달한다.

# '스타워즈' 동호회장 이형진(45·가명)씨는 영화 '스타워즈' 관련 콘텐츠라면 게임, 코스프레, 레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즐긴다. 미국 출장에서 레고인 우주선 밀레니엄 팔콘을 구입해오거나 딸에게 스타워즈 유아복을 입히는 식이다. 그는 올해가 가기 전 동호회원들과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보러 갈 계획이다.

은밀하던 덕후 문화가 달라졌다. 덕후들이 신상 공개도 감수하며 오프라인 활동을 즐기고 있다. 콘텐츠 재생산, 중고매매 등 생산적으로 취미를 즐기는 이들도 늘었다. 최근엔 공인이 덕밍아웃(덕후인 사실을 스스로 공개하는 행동)을 하거나 직접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경우가 늘어 덕후들의 세계가 더 활기를 띠는 모양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동호회를 운영해온 진성 덕후 3명이 모였다. 비주류로 괄시 받던 시절을 견뎌낸 나름 뚝심 있는 사나이들이다. 평범한 가장인 이들이 어떻게 덕후가 됐을까. 또 실제 덕후들은 스타 덕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어른아이로 커버린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3040세대에게 어린 시절 추억으로 남아있는 애니메이션 '건담'. 피규어, 애니메이션 덕후들에겐 과거가 아닌 현실로 존재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3040세대에게 어린 시절 추억으로 남아있는 애니메이션 '건담'. 피규어, 애니메이션 덕후들에겐 과거가 아닌 현실로 존재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덕후는 건강한 문화인?

오즈(김봉하씨·피규어)= 나는 비교적 늦게 피규어에 빠졌다. 2008년 일본 여행 중 우연히 아톰 피규어를 구입한 게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어린 시절 좋아하던 만화 캐릭터 장난감을 찾아 하나씩 구입한 것이 지금까지 왔다. 다들 어떻게 덕후가 됐나.

하루나(옥태석씨·애니메이션)= 중학교 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다가 2000년대 초반 블로그에 리뷰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리뷰를 작성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외롭게 취미생활을 즐기던 중 블로그를 통해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덕후들을 만났다. 이들과 동호회를 개설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포스맨(이형진씨·스타워즈)= 원래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다. 수많은 SF 영화 중 '스타워즈' 에 빠진 이유는 이 작품이 다른 SF 영화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또 '스타워즈' 는 지난 30년간 끊임없이 관련 콘텐츠가 재생산됐다. 매번 새롭게 즐길 거리가 생기니 질릴 일이 없다.

오즈= 가족들은 취미를 이해하는 편인가? 내 딸은 아빠의 취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피규어 덕후'로 출연 요청이 들어왔는데 딸의 반응이 걱정돼 거절했다.

포스맨=비슷하다. 내 아내도 취미를 반기지 않는다. 그래도 동호회 운영을 그만두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딸이나 조카들은 좀 다르다. 가끔 '스타워즈' 레고나 기념품을 선물해주니 좋아한다. 고전 영화로 여겨지지만 생각보다 어린 친구들이 '스타워즈'에 빠져있다. 예전에 진행한 정모에도 중학생들이 많이 참여했다.

하루나=결혼하면서 아내에게 만화책을 버리라는 압박을 받았다. 많이 버려서 지금은 만화책 10종, DVD 15편 정도만 남아있다.

오즈=가족들은 반기지 않지만 덕후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1~2년 사이에 변한 것 같다. 2000년대 초반에는 덕후를 이해하는 일반인이 많지 않았다.

포스맨= 지인들에게 내 취미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인데, 초반에는 대부분 '다 큰 어른이 왜 광선검을 좋아하느냐'는 반응이었다. 지금은 '스타워즈'의 패션, 코스프레까지는 아니어도 영화 기호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는 이들이 생겼다.

하루나= 우리는 여전히 차가운 시선과 싸우고 있다. 다만 과거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던 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이전보다 부정적인 인식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오즈= 피규어 분야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올해 키덜트 시장 규모가 5,000억원 이상 성장했다는 뉴스를 봤다. 이런 현상엔 미디어의 역할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언론 매체에서 키덜트를 어른들의 기형적인 취미가 아닌 건강한 놀이 문화로 부각시켰다. 여기에 덕밍아웃하는 연예인까지 늘어나 키덜트족이 이미지 상승 효과를 보고 있다.

하루나= 역으로 생각하면 연예인이 덕밍아웃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대중 인식의 변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덕후를 사회부적응자가 아닌 건강한 문화인으로 이해하게 된 최근의 변화가 연예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연예계 덕후들, 진정성 느껴져"

오즈= 현재 동호회에 셰프 최현석이 회원으로 있다. 종종 게시판에 안부글을 올리고 오프라인 정모에도 얼굴을 비칠 정도로 적극적이다. 두 달 전 정모에도 참석해 회원들과 피규어 정보를 공유했다. 고전 만화 피규어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덕후 중에 덕후다. 며칠 전에는 "수집을 자제해야겠다"며 구하기 힘든 스타징가 피규어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하루나= 배우 이시영도 대표적인 스타 덕후다. 방 안 가득 고가의 건담 프라모델을 전시해놓은 것을 보고 놀랐다. 여자가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분야인데 매니아 사이에서도 구하기 힘든 모델을 보유하고 있더라.

포스맨= 경제적인 능력이 되는 연예인들은 희귀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모습을 보면 부러움도 느낀다. 연예계에는 경제적인 능력이 되면서 바깥 활동을 하기 어려운 이들이 많다. 혼자만의 취미를 즐기기 딱 좋은 환경이 아닌가.

오즈= 그렇게 보면 배우 심형탁의 고백이 더 의미있게 느껴진다. 개그 소재로 활용했지만, 긴 시간 혼자 좋아하다가 전국적으로 덕밍아웃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금만 잘못 다뤄졌어도 연예인으로서 타격이 컸을 텐데 그런 위험까지 감수했다.

하루나= 심형탁, 가수 데프콘 등은 언론에서 이미지가 잘 만들어진 경우라고도 볼 수 있지 않나?

오즈= 언론의 역할도 있겠지만, 이들의 고백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심형탁의 경우 일본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은 전문 동호회가 생길 만큼 팬덤이 강한 콘텐츠가 아니다. 관련 아이템을 수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모은 물건들을 보면 '도라에몽'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포스맨= 요즘 연예계에 '덕후' 키워드가 부상하고 있지만, 이런 현상이 실제 덕후 증가에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다. 주류 문화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취미를 즐기는 게 덕후의 기본 성향인데, 진짜 덕후라면 연예계 트렌드와는 상관없이 활동하지 않겠나.

오즈= 스타 덕후들이 덕후에 대한 편견을 줄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포스맨=사실 덕후는 술값으로 나갈 돈을 취미에 투자하는 건강한 문화인이 아니겠나. 개인의 취미생활로 존중해줘야 한다.

오즈=나홀로족이 줄지 않는 이상 덕후도 계속 늘어나지 않을까. 퇴근 후 혼자 식당 가고 영화 보는 게 창피하지 않은 세상이다. 혼자만의 놀이문화로 외로움을 달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루나=애니메이션 덕후도 늘어날 것이다. 여전히 불법 복제가 많지만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앞으로 문화가 건강하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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