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두 질문 “너는 어디에 있느냐”, “네가 나를 누구로 아느냐”
“낯섦이 곧 신이다. 나와 같은 것만 사랑하려는 태도는 성서, 종교와 무관”
“지도자들이 묵상 연습해야… 자신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히면 감동 못 줘”
‘신을 믿는 과학자’는 형용모순인가. 사뭇 모순투성이처럼 보이는 성서는 어떻게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서 여전히 누군가의 생의 가치지향으로 자리하고 있는가.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21세기북스)은 이 같은 난제에 직면해 신학, 종교학, 고전문헌학의 존재 이유를 증거하는 책이다. 저자는 고전문헌학의 권위자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세계 최초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동시에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고대 쐐기문자를 비롯해 구약성서에 쓰인 고전 히브리어와 아람어, 신약성서에 쓰인 그리스어 등 고대 언어를 연구해온 학자다. 두 책은 신약과 구약의 당대 저자의 관점을 집요하고 치밀하게 분석한 그가 21세기의 독자 앞에 종교의 본질과 성서의 가치를 펼쳐 보이는 수작(秀作)이다.
9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배 교수는 “이념과 도그마를 떠나 인간의 질문과 갈망, 지혜를 응축한 성서는 다이내믹한 해석의 책”이라며 “2,000년간 겹겹이 쌓이고 교리로 강화된 특정 해석을 건너뛰고 저자의 당대 집필 의도를 통해 인간의 위대함을 찾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집트 세인트 캐서린 수도원에서 얇은 양피지의 4세기 그리스어 성서사본 ‘코덱스 시나이티쿠스(Codex Sinaiticus)’가 발견됐는데, 이 성경 한 권에만 마지널노트(marginal noteㆍ다른 번역 가능성을 밝힌 주석)가 30만개 있었다”며 “4세기에 이미 이런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 책을 적잖은 이들이 남이 알려주는 대로만 믿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각에서 성서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책으로 취급 받는 것도 이 같은 자세 때문이라고 봤다. “성서는 인간고뇌를 응축한 고전의 꽃, 인문학의 기둥이에요. 종교서, 교리서로 납치돼 오해를 받았을 뿐이죠.”
배 교수는 언어학, 문헌학, 인류학 등을 망라하며 성서 속 표현을 발굴하고 파고들고 재구성한다. 이 때문에 통념과는 다른 해석이 적지 않다. ‘금지된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원죄’에 대한 해석이 대표적이다. 그는 원문에 따르면 이는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 즉 우주의 신비와 비밀을 푸는 지식이 담긴 열매를 먹었다는 의미에 해당하며, DNA 속에 위대한 씨앗을 품은 깨달은 자가 됐음을 상징하는 메타포라고 설명한다. “열매를 먹은 인간은 오만과 원죄를 지닌 자가 아니라, 오랜 잠에서 깨어난, 신성을 지닌 존엄한 존재가 되는 셈이죠. 나도 내 옆의 형제도, 원수조차도.”
동생 아벨을 살해한 가인의 기록은 독자의 이기적 본능과 이타성을 가늠하는 이야기로 풀이된다. “네 동생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는 신에게 “저는 모릅니다.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반문하는 가인의 모습을 통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기적 인간이냐, 당신과 마찬가지로 신성을 지닌 형제자매를 지키려는 이타적 인간이냐”를 묻고 있다는 것이다.
두 책이 지닌 또 하나의 미덕은 이 같은 해석을 21세기의 현실로 고스란히 가져와 풀어낸다는 점이다. 예컨대 배 교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4년 민주당원 모임 연설에서 이 같은 성서의 물음에 응답하는 장면을 소개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만일 어딘가에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이 의료비와 월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그녀가 제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제 삶마저 가난하게 된다”고 말한 뒤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저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제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저는 제 자매를 지키는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를 작동하게 합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며 끝끝내 양자역학을 의심한 아인슈타인의 종교관 등을 소개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교리와는 별개로 성서를 분석하는 배 교수는 “성서를 맹신하는 것도, 그렇다고 비난하는 것도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프로이트와 칼 융이 등장하기도 전에 창세기 저자들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을 탐구하고 인간이 누구인가를 묻기 시작했고, 셰익스피어와 단테가 등장하기도 전에 겁에 질리고 좌절하는 보통의 인간을 상상의 무대에 올렸다”며 “어린아이에게 생명 탄생의 과정을 다양하게 풀이해주는 어머니처럼 자기 나름의 설명을 시도한 성서 저자를 현재 과학과 역사의 관점에서 공격하는 행위는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제 해석이 정답이라는 것도 아니에요. 이 책을 하나의 매뉴얼로 삼고 자신만의 창세기, 자신만의 응답을 찾아보라는 것이죠. 소크라테스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질문이었잖아요. 성서를 읽는 사람은 마땅히 질문해야죠.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똑똑한 유신론자들을 위한 변명’을 훌륭하게 쏟아내는 그는 다만 “그리스도교가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냐”는 질문에는 다소 비관적인 답을 내놓는다. “생활 윤리나 자비 행위보다 교리를 숭배하는 한, 초기 그리스도교와 같은 자생적이고 감동적인 모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교는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신약은 예수가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만나는 ‘낯선 자’라고 증언하고 있는데, 우리와 생각이 다른 낯선 자를 회피, 차별하는 한 우리는 결코 신을 만날 수 없고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도 없죠.”
유학 시절부터 매일 아침 15~30분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배 교수는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자신의 욕망과 편견을 신에게 떼쓰는 기도가 아니라 삶을 경외하고 내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어떤 배역을 수행하고 있는가를 고뇌하는 묵상”이라며 “우리의 지도자, 리더들에게도 이 같은 묵상과 자비의 시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성경이 인류에게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질문으로 “네가 어디에 있느냐”(구약)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신약)를 꼽았다. 배 교수가 독자들에게 제기하는 질문은 우리 모두의 생의 지향점을 겨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는 질문은 모든 인류에게 신이 묻고 싶은 첫 번째 질문이자, 인간이 신에게 외치는 질문이다. 당신이 꼭 이루어야 할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의 헌신하는 삶을 통해 당신은 무엇을 배웠는가. 에덴동산에서 방황하던 아담과 이브처럼 삶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에게 신은 묻는다. 네가 어디 있느냐.”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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