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값은 늘 비싼 게 문제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까지 국제 유가는 2010년 달러 가치 기준으로 배럴 당 20 달러 이하에서 안정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증산 여력의 한계로 가격 결정권이 미국에서 중동 산유국들로 넘어가고, 1960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출범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수요ㆍ공급 요인 외에 중동 산유국들의 자원민족주의와 현지의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국제 원유가격이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70년대의 ‘석유파동(Oil Shock)’이 가장 극적인 사건이었다.
▦ 1차 석유파동은 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으로 촉발됐다. OPEC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원했던 미국 등 서방을 압박하기 위해 즉각 유가 인상과 공급 축소에 착수해 단 6개월 만에 배럴 당 3.50 달러 이하였던 유가(당시 명목가치)를 12 달러(2010년 달러 기준 약 45 달러) 이상으로 무려 4배 가까이 올렸다. 2차 석유파동은 78년 혁명 와중에 이란이 전면적인 석유금수조치를 단행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당시 명목가치로 배럴 당 14 달러 선이었던 국제 유가는 81년 35 달러(2010년 달러 기준 75 달러 이상)까지 치솟았다.
▦ 석유파동은 글로벌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 우리 경제도 2차 파동 땐 크게 휘청거렸다. 고도성장세가 꺾여 79년 성장률이 6.5%로 하락했고, 이듬해인 80년엔 마이너스 5.2%까지 추락했다. 대통령 시해와 군부 쿠테타로 뒤죽박죽이었던 그 해, 물가상승률은 30%에 이르렀고 경상수지 적자도 53억2,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는 이후에도 1996년 전후, 2011년 리비아 사태 전후에도 급등해 글로벌 경제를 불안에 빠뜨렸다.
▦ 하지만 이번엔 저유가가 문제다. 지난해 6월 100 달러(WTI 기준)를 넘어섰던 국제 유가는 최근 38 달러 선까지 폭락했다. 공급 과잉, 셰일가스와의 가격경쟁, 산유국 이해 충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문제는 글로벌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유가 하락이 제조업체들에게 생산비 하락에 따른 긍정적 효과보다는 매출과 수익 급락 등 부작용을 강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일부 산유국 재정난 등 금융불안 우려까지 증폭되고 있으니, 이러다간 글로벌 경제가 진짜 저유가 쇼크에 빠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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