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발표한 사법시험 폐지 유예의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사시 폐지를 주장하는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재학생 6,000여명은 10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재학생 전원이 자퇴서를 내고 내년 1월의 변호사 시험과 남은 학사일정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로스쿨 교수들도 변호사 시험과 사법시험 출제를 거부한 상태다. 이에 맞서 사시 존치 지지 진영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로스쿨이 없는 학교의 법학과 교수와 학생, 고시생들은 ‘사법시험 존치를 촉구하는 총 국민연대’를 결성하고 사시 존치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한 청원서를 국회에 냈다.
양측의 오랜 갈등에 비추어 현재의 대립과 갈등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만, 법무부의 일방적이고 어설픈 발표가 사태를 더욱 꼬이게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법무부는 지난달 열린 국회 공청회에서는 사시 존치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름 만인 지난 3일 갑자기 사시 폐지 유예 방침을 내놓았다. 사전에 대법원이나 교육부 등 유관 기관과 협의조차 없었다. 더 기막힌 건 로스쿨 학생들의 반발이 거세자 하루 만에 “최종 입장은 아니다”라고 물러선 점이다. 뚜렷한 방향도 없는 상태에서 졸속으로 발표를 했다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다. 발표를 주도한 관련자들에 대한 문책론이 나오고도 남는다.
사시 존치 주장은 로스쿨 제도가 적잖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데서 비롯했다. 과도한 학비와 불투명한 학생 선발 과정, 졸업 후 작용하는 학벌과 부모의 배경 등을 이유로 ‘현대판 음서제’라는 오명을 써 왔다. 그렇다고 사시 폐지 유예가 근본적 해답이 될 수도 없다. 로스쿨 못지 않은 고비용과 합격률이 4%에 불과해 수많은 ‘고시 낭인’을 양산하는 현실 등, 극히 예외적 적용만 가능한 ‘희망의 사다리’라는 한마디로 모두 덮고 가기에는 문제점이 너무 많다.
지금은 법조계 전체가 파국으로 치달을지도 모르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일반 국민들의 의견도 양 쪽으로 갈리고 있다. 소모적 갈등과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어차피 관련 법률을 손질해야 하는 국회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에는 사시 존치와 관련된 법안 6개가 상정돼 있으나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지난달 공청회 한 번 연 것을 빼면 손을 놓다시피 했으니 국회가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1996년 한약분쟁으로 전국의 한의대생 수천 명이 집단유급 사태를 빚는 등 사회적 혼란을 불렀다. 이번에도 자칫 그런 전철을 밟을까 우려된다. 국회는 공청회 등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걸쳐 조속한 시일 내에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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