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53)의 도전은 언제나 흥미롭다. 지난해 영화 ‘명량’과 ‘루시’로 시대의 영웅 이순신 장군과 희대의 악당 미스터 장을 연기하더니 1년 만에 조선의 명포수가 돼 나타났다. 지천명을 넘긴 배우의 변신이 즐거운 건 한국영화의 이야깃거리가 아직은 다양하는 방증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민식이 선택한 영화 ‘대호’(16일 개봉)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짐승을 잡는 포수 천만덕과 그에 대적하는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예측할 수 있듯이 호랑이는 100% 컴퓨터그래픽(CG)로 구현됐다. 몸무게 400㎏, 길이 380㎝의 대호가 스크린 속에서 포효하고 광기를 부리는 장면은 가슴을 졸이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10일 오전 서울 부암동 한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도 “처음에는 ‘호랑이가 나오는 영화가 가능해? 그것도 한국에서?’라는 의구심이 들었다”며 “영화가 나오고 그런 의심을 했다는 것에 깊은 사과를 드린다. 영화가 성공한다면 그건 100% CG의 공”이라고 말했다.
최민식은 사석에서 영화 ‘신세계’로 호흡을 맞췄던 박훈정 감독에게 ‘대호’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대호’로 1년여 간 대화를 이어갔다. 최민식은 “이게 투자 받을 수 있겠느냐”고 비관하다가도 “기술적인 뒷받침이 된다면 한 번 질러보자”는 낙관론으로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촬영에 돌입했을 때 최민식은 또 한 번 당황했다. 실체가 없는 호랑이를 머릿속으로 상상해가며 연기해야 했다. 호랑이의 크기를 감안해 눈높이를 맞추고 동작을 염두에 두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내는 것이 모험 그 자체였다고.
“그렇게 6개월 동안 허공에 대고 총질하고 소리를 질렀다”는 그는 “다시 하라고 하면 다신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처음 해보는 CG를 동반한 연기가 꽤나 어색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최민식은 최민식이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일본의 명령에 의해 호랑이를 포획하거나 지켜야 하는 갈림길에 선 포수의 운명과 아내 없이 홀로 키운 아들 석이(성유빈)에 대한 부성애를 스크린에 듬뿍 담아낸다. “어느 산이 됐건 산군(山君)님들은 건드리는 게 아니여”라며 일본과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되뇌는 장면은 최민식이라는 배우에 의해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총잡이로서 손가락 하나에도 숨을 고르며 연기했다는 그. “경지에 오른 포수이기 때문에 호랑이가 다가올 때의 총 잡는 자세와 방아쇠를 당기듯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는 움직임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다행인 건 총 잡는 폼은 좀 타고 난 듯해요. 군대에서도 사격 잘해서 휴가도 많이 나왔거든요. 하하”
영화는 139분 러닝타임 동안 포수와 호랑이 그리고 지리산을 그리며 한국적인 풍광에 집중한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에 충분하다. 최민식도 이러한 지적에 대해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호흡이 너무 느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어요. 그러나 마의 두 시간이라는 제한의 틀을 벗어나 세 시간, 네 시간짜리 영화도 나왔으면 합니다. 상업적인 잣대로는 상상할 수 없겠지만 영화의 다양성 추구로 보면 필요한 작업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호’는 최민식의 등장만으로 영화계를 한껏 들뜨게 하고 있다. 같은 날 개봉하는 영화 ‘히말라야’의 배우 황정민과의 대결구도만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천만 배우인 두 사람의 연기는 벌써부터 화제다.
“자꾸 대결구도라고 하는데 서로 잘 되어야지 않겠어요? ‘대호’와 ‘히말라야’가 인간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더 그런 마음이 듭니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예의를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후배 황정민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가뜩이다 얼굴 벌겋던데 술 좀 그만 먹어라. 나도 살 뺄게. 하하.”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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