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황오동 태종로 팔우정로터리(삼거리)에서 경주고속터미널방향 남쪽 도로변에는 그 유명한 팔우정해장국골목이 있다. 팔우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쪽샘지구 유적발굴현장과 대릉원 가까이에 밀집한 해장국골목에선 팔우정해장국 또는 경주해장국으로 불리는 콩나물해장국으로 유명하다.
광복 전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골목은 술꾼들의 속 풀이뿐 아니라 가볍게 요기를 하기에도 그만인 곳이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을 제외하면 줄곧 24시간 영업을 해 왔다. 새벽 일찍 경주에 도착하거나 밤 늦게 내린 여행객들의 허전한 배를 채워주곤 했다. 토함산 해돋이를 보러 온 관광객들에게도 빠뜨릴 수 없는 추억의 골목이다. 콩나물국에 메밀묵을 넣은 것이 특징인 이곳 해장국은 신김치와 해초인 모자반을 넣고 끓여내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전주식 해장국과 달리 경주만의 독특한 맛을 이어왔다. 1970년 경주관광단지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이곳도 번성했다. 1980년대에는 30여 곳이 성업했다. 1990년 즈음엔 경주시 명물거리로 지정될 정도였다. 특히 1990년대 초 심야영업이 금지 당시 관광특구로 지정돼 24시간 영업이 가능했던 이곳에는 대구 울산 등지에서 원정 온 술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관광객뿐 아니라 뜨끈한 해장국으로 요기를 하고 새벽에 일터로 나가야만 하던 노동자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이 같은 경주의 명물 팔우정해장국골목이 사라지고 있다. 현재 이 골목에 남은 해장국집은 모두 7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2곳은 폐업 준비에 들어가 영업중인 곳은 5곳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업소도 조만간 다른 지역으로 옮기거나 문을 닫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2001년부터 해장국골목과 붙은 쪽샘지구 정비사업을 벌이면서 팔우정해장국골목을 포함한 인근 상가와 주택을 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키로 했기 때문이다. 시는 상인들과 협의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 보상금을 지급하면서 폐업을 유도하고 있다.
그 동안 20여 곳이 다른 데로 이전하거나 문을 닫았다. 올해도 2곳이 그만뒀다. 아직 건물은 남았지만 밤이면 불 꺼진 간판이 마치 이빨 빠진 것처럼 ‘골목’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경주시는 2025년까지 정비작업을 마치기로 하고 업주들과 수시로 이전을 협의하고 있다. 문화재지구는 다른 개발사업과 달리 강제수용은 안 되지만 업주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수년 내에 팔우정해장국거리는 사라질 전망이다.
아직 영업중인 곳도 장사가 예전만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 꺼진 간판이 많다 보니 골목 자체가 죽고 있기 때문이다. 술꾼들도 스산해진 골목 분위기 탓인지 발길이 점차 뜸해지고 있다. 5년간 이곳에서 영업해 온 권오숙씨(77)는 “80년대 초반엔 22개가 영업했고, 이 골목에 자리가 없어 건너편 골목에도 가게를 낼 정도였다”며 “웬만한 집에는 유명 연예인들 방문 사진이나 사인이 없는 집이 없다”고 자랑했다.
권씨 등 남은 업주들 모두 고민이 많다. 고령의 업주들이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질 경우 지금처럼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는 현실적 고민이 앞서고 있다. 업주들은 “문화유적지 정비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가 명물거리로 지정한 곳이니만큼 다른 지역에 집단으로 이전할 수 있게 부지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해장국 업소에 대한 강제수용은 없다”면서도 “2025년까지 쪽샘지구 정비를 차질 없이 진행하려면 업주들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조해 주기를 기대한다”며 다른 이전 대안은 밝히지 못했다.
글ㆍ사진 김성웅기자 k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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