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세계 영화산업을 주도하는 것이 미국 할리우드라면 차세대 주자는 중국의 ‘찰리우드’(Chollywood)가 될 것이라는 말이 어느새 세계 영화계에서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찰리우드는 차이나(China)와 할리우드(Hollywood)를 합친 신조어다. 찰리우드가 향후 3년 안에 전세계 영화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 면에서 할리우드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찰리우드의 중심에 산둥성에 위치한 칭다오 영화산업단지가 있다.
세계 최대의 영화산업단지로 변모하는 칭다오
전세계인들에게 중국 칭다오는 ‘칭다오 맥주’로 유명하다. 아편전쟁 이후 독일 조계지였던 이곳에서 1903년 독일인과 영국인이 합작으로 로망맥주지분유한공사를 설립하면서 칭다오 맥주의 역사가 시작됐다. 맥주 공장이 즐비하던 칭다오에는 지금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며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을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칭다오의 해변 도로를 운전하다면 언덕에 ‘동팡잉두(東方影都)’이라는 거대한 글자를 발견하게 된다. 전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지인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의 할리우드 언덕에 설치된 ‘HOLLYWOOD’ 간판을 연상시킨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칭다오에 걸린 글자가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것보다 훨씬 크고 새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 최대 부동산기업인 완다그룹은 이곳에 약 500억위안(약 9조5,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세계 최대규모의 영화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2017년 4월 개관을 목표로 총 건축면적만 540만㎡ 규모로 우리나라 에버랜드 면적의 3.6배 크기에 이른다. 이 단지에는 영화관 수십 개와 놀이공원, 객실 4,000개를 보유한 호텔, 쇼핑센터, 요트 300대를 한꺼번에 정박할 수 있는 항구, 유명인사를 왁스로 본 떠 만들어 전시하는 박물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레프는 “칭다오 영화산업단지에는 영화에서 사운드 필름을 제작하는 방음 스튜디오만 30개가 넘게 건설되고 세계 최대 크기의 야외 3D 영화 스튜디오가 설치될 예정”이라며 “칭다오는 전세계에서 최대 규모로 가장 최첨단 기술을 갖춘 영화단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3년 중국 부호 1위에 올랐던 왕젠린(王健林ㆍ61) 완다그룹 창업자 겸 회장은 4일 중국 일간 신경보와 한 인터뷰에서 “중국에서는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 여행 등 3가지 영역에서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과 쇼핑몰로 재산을 모은 왕젠린 회장은 2012년 미국 영화체인업체인 AMC 등 영화업체들을 잇따라 사들이며 사업을 확장했고 현재는 할리우드를 넘어서는 영화 플랫폼을 중국에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포부를 밝히고 있다. 중국 정부도 완다그룹에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다. 중국 당국은 2012년 11월 3D 등 최첨단기술로 영화를 촬영하거나 방영한 제작사나 영화관에 대해 투자금을 환급해주는 정책을 발표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영화를 박스오피스 수입 5,000만~1억 위안, 1억~3억 위안 등으로 분류해 투자금을 일부 환급해주기로 결정했다.
칭다오로 몰려드는 할리우드 영화산업
영화산업단지 건설이 현재 절반쯤 진행된 칭다오에서 내년 11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영화 ‘더 그레이트 월’(만리장성)이 촬영 중이다. 2008년 중국 베이징올림픽에서 개막식 공연을 담당했던 중국 유명감독 장이머우(張藝謀)가 연출을 맡고 주연은 영화 ‘마션’ 등으로 잘 알려진 멧 데이먼과 ‘지존무상’ 등으로 유명한 홍콩배우 류더화(劉德華)가 맡았다. 더 그레이트 월은 미국과 중국 간 사상 최대의 합작영화로 꼽힌다. 제작비만 약 1억5,000만달러(약 1,752억원)가 투입될 예정으로 투자 업체에는 영화 ‘쥬라기 공원’과 ‘인셉션’ 등의 자금을 지원한 할리우드 프로덕션과 유니버셜픽쳐스, 국영기업인 차이나픽쳐스 등 쟁쟁한 기업들이 이름을 올렸다.
더 그레이트 월 제작현장은 침체기를 맞고 있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황금시장인 중국으로 몰려드는 모습을 상징한다는 지적이다. 중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영화 흥행 수입은 사상최대인 약 296억3,900만위안(약 5조3,513억)을 기록했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세계 1위인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중국 시장은 매년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국민 소득이 증가하면서 여가생활을 위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 이런 현상에 한몫을 하고 있다. 중국 내 극장 수도 2010년 6,256개에서 2014년 2만4,317개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17년 중국 영화 관람 수익은 100억달러를 돌파해 미국을 제치고 중국이 세계 최대 영화시장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최근 북미 영화시장의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등의 영화 시장규모는 지난해 대비 5% 줄어든 104억달러를 기록했다. 할리우드가 수십 년 간 영화산업을 주도하면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영화 ‘아이언맨 3’의 경우 40% 이상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 등 사후제작이 강조돼 현장촬영의 중요성이 줄어들면서 영화사들이 미국을 떠나 촬영비가 적게 드는 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할리우드 영화기업들이 2014년 개봉한 영화 106편 중 오로지 22편만이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들어졌고 2015년에는 단 한편도 없는 등 할리우드 영화관계자들의 일자리 수십만 개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및 시각효과 제작회사인 리듬앤휴스 스튜디오는 2013년에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로 시각효과 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받기 2주 전 법원에 파산신청을 한 사건은 할리우드의 쇠퇴를 보여준 대표적 예이다.
궁지에 몰린 할리우드 영화제작사와 관련 종사자, 배우들은 넓은 시장과 일자리를 찾아 중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미국 월트디즈니 영화사는 지난해 중국 상하이동방미디어그룹(SMG) 산하 영화사와 향후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해 블록버스터 대작을 공동 제작하기로 했고, 미 영화제작사 워너브러더스는 올해 9월 중국 투자기업인 차이나미디어캐피털(CMC)와 홍콩에 합작 영화제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미 영화사인 라이온스게이트 엔터테인먼트는 중국 후난TV 그룹과 투자계약을, 중국 최대 온라인 기업인 알리바바는 영화 ‘미션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의 중국 내 배급과 관련해 파라마운트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할리우드 영화기업들의 중국시장 진출은 자연히 전세계 영화계에서 찰리우드의 입김을 강하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해 개봉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4 : 사라진 시대’에서 중국 베이징과 충칭, 텐진 등 현지 촬영 분이 중국인 관객을 겨냥해 영화에 첨가됐고, 올해 개봉한 영화 ‘픽셀’에서는 중국의 상징인 만리장성이 파괴되는 장면이 삭제되기도 했다. 중국시장을 제외하고 이제 영화흥행을 논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시대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 완다그룹이 2017년 4월 칭다오 영화산업단지를 개관하면 세계 영화의 중심이 할리우드가 아닌 칭다오 찰리우드로 급격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중국 영화사들은 전세계 영화들은 모두 중국 내 지역에서 중국을 위해 만들고, 해당 영화의 수출은 중국이 아닌 나머지 국가들로 한다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며 “그 중심에 칭다오 영화산업단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칭다오 영화산업단지에 회의적 전망도
칭다오 영화산업단지 건설이 영화 제작의 시대적인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있다.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은 최근 텔레그레프와 인터뷰에서 “대규모의 영화제작단지와 영화 촬영, 극장 배급까지 모든 채널을 단일 기업이 갖춘 적은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다”면서 “완다그룹은 그 최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칭다오 영화산업단지를 통해 완다그룹이 영화의 탄생부터 무덤까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였다.
하지만 이는 할리우드 영화계가 이미 수십년 전에 포기한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1920년 이후 부흥하기 시작하자 각 영화사들은 유명 감독과 작가, 직원 등을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해 관리하는 것은 물론 독자적인 스튜디오와 촬영장비 구입 등 거대 단일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결국 유지관리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하면서 외주와 프리랜서 등의 방법으로 전환돼 현재에 이르렀다. 완다그룹이 칭다오 영화산업단지를 통해 모든 과정을 일원화해 관리하려는 방식은 결국 할리우드가 경험했던 장벽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과다한 영화 검열도 중국 영화의 세계화를 막는 걸림돌이다. 중국 정부는 영화에 나체나 유령, 시간여행, 심각한 폭력 등과 같은 소재들이 쓰이거나 장면에 삽입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성적이고 미신을 조장하는 내용는 국영 방송과 언론 등에서 다루기에는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다. 이는 영화의 창작환경을 제약해 찰리우드의 성장에 한계가 될 수밖에 없다. 미 주간지인 애틀랜틱은 “완다그룹은 중국 정부와 협상을 벌이며 검열 기준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검열 수준이 지금보다 완화되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거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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