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공장 이전 때 주민 합의 외면
규탄 서명운동 이어 총선 쟁점으로
한화 “더 이상 지킬 것 없다” 반박
㈜한화가 10여년 전 충북 보은으로 화약공장을 이전할 당시 보은 주민들과 합의했던 주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잠잠했던 지역 민심이 “대기업의 사기극”이라며 다시 끓어 오르고 있다.
9일 보은군의회와 보은발전협의회 등에 따르면 한화는 2003년 인천에 있던 화약공장을 보은으로 이전을 추진할 당시 주민들이 안전 위험을 들어 반대운동을 벌이자 ▦본사 주소지 보은 이전 ▦협력업체 유치 ▦골프장 추진을 위한 타당성 검토 ▦장학금 기탁 등 모두 7가지 지역협력 사업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보은군은 이듬해 한화에 내북면 보은공장 증축 허가를 내줬고, 한화는 2년여 만인 2006년 10월 인천공장을 보은으로 완전 이전했다.
그러나 한화측은 본사 주소지 보은 이전, 협력업체 유치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핵심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골프장 건설 추진과 관련해서는 “타당성 용역 결과 수익성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며 도중에 발을 빼버렸다.
이 같은 한화의 행보에 대해 지역 주민들은 “배신당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역 29개 시민ㆍ사회 단체로 구성된 보은발전협의회는 최근 가진 모임에서 한화측이 당초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키로 의견을 모았다. 협의회는 한화의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군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이 문제를 내년 총선 때 이슈화하기로 했다.
이 협의회 박병준 회장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고 약속하기에 주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시설인데도 모든 걸 양보했었다”며 “결국 보은 주민들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바보’가 됐다”고 한화측을 성토했다. 그는 “‘신의’를 사훈으로 하고 있다는 대기업이 이를 내팽개친 채 돈 몇 푼으로 지역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보은군의회도 한화의 약속 불이행 문제를 따지고 나섰다.
박경숙 의원(새누리당)은 최근 행정사무감사에서 “한화가 보은이전 당시 군민에 약속했던 사안을 이행하지 않거나 생색내기로 일관해 보은군과 군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군과 군의회, 지역 사회단체를 총 망라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한화 문제를 원점부터 다시 따져보고 합의안 이행을 촉구하거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화측은 “지역협력 사업은 이미 마무리됐다”고 반박했다.
한화 보은공장 김관수 팀장은 “약속했던 지역협력 사업은 보은군과 협의해 완전히 마무리지었기 때문에 어긴 적도 없고 더 이상 지킬 것도 없다”며 “최근 약속 불이행 문제를 꺼낸 사람은 극히 일부분이며 지역 전체 여론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한화 보은공장에서는 1997년과 1998년, 2003년에 대형 폭발 사고가 연이어 발생, 주민들이 공장폐쇄를 요구했다. 그 와중에 한화측은 인천공장의 보은 이전을 추진, 주민들과 심한 마찰을 빚었다.
한덕동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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