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땅 안데스 산맥의 동쪽에 아마존 열대우림이 펼쳐져 있다면, 안데스의 서쪽 해안가는 대부분 사막지대다. 안데스 고원이나 아마존과 함께 광활한 사막 또한 매혹적인 페루 풍경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메마른 죽음의 땅 사막. 하지만 페루의 사막은 약동하는 생명, 경이로운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파라카스ㆍ이카에서의 사막 질주
페루 수도 리마에서 파라카스로 가는 도중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났다. 그걸 수리하느라 지체된 게 1시간여. 그 때문인가 보다. 파라카스의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SUV로 갈아타고 나갔건만 사막의 듄 위로 올라섰을 때 해는 이미 지고 말았다. 석양으로 완성될 듄 능선의 음영과 그라데이션, 사막에 번지는 붉은 빛을 포착하려고 했지만 포기해야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제 막 주먹만한 별들이 검은 하늘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다시 차에 올라타 야밤의 롤러코스터를 즐긴다. 듄의 능선을 타고 한참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질주하던 차가 갑자기 낭떠러지 같은 경사로 푹 고꾸라진다. ‘앗’ 하는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데 갑자기 눈앞에 신기루처럼 등장한 새하얀 텐트. 오아시스에 차려진 거상의 텐트마냥 고급스럽다.
사막에서의 한밤 피크닉이다. 미리 대기중인 리조트 직원들이 구워 낸 닭과 쇠고기 꼬치 등을 곁들여 쿠스케냐(페루 대표 맥주)를 들이킨다. 고기로 배를 불리고 맥주에 취한 채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사막의 밤은 황홀하고 찬란했다.
파라카스 사막에서의 석양에 대한 아쉬움은 이카사막에서의 버기카트 질주로 말끔히 씻어냈다. 사방이 뚫린데다 출력도 SUV 못지 않아 체감 속도는 더 강력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거란 광고문구가 과장이 아니었다. 입으로 들어오는 모래만 아니라면 더 큰 소리로 환호를 질렀을 것이다.
카트는 높다란 듄의 정상에서 멈췄다. 가이드는 카트에서 내리라 하곤 보드를 내어준다. 모래 위에서 미끄럼을 타는 샌드보드다. 스키장 최상급 코스의 경사로 미끄러져 내린다. 가파른 경사에 처음 기겁을 하지만 눈이 아닌 모래라 생각만큼 속도가 빠르지 않다.
카트가 사막을 질주하는 중간 마을의 개떼들이 몰려들었다. 함께 경주라도 하겠다는 듯 따라 달린다. 허기를 잊기 위함인지, 달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적개심 때문인지 개들은 맹렬히 뒤를 쫓았다. 사막 질주에 또 하나의 기억이 새겨졌다.
새들의 천국 바예스타
파라카스 바로 앞에 새똥으로 유명한 섬, 바예스타(Ballesta)가 있다. 새의 변인 구아노(Guano)로 하얗게 뒤덮여 있는 섬이다. 켜켜이 쌓인 구아노는 최상의 비료로 16세기 잉카문명 시절부터 페루인에게 큰 소득원이었다고 한다. 19세기 중반 중국에서 대규모 이민노동자들 불러모은 것도 이 구아노였다고. 2011년 이 섬에서 채취한 구아노는 5,600톤에 이른단다.
이 섬에 살며 엄청난 구아노를 쏟아내는 새들은 약 3억 마리. 새들의 천국이다. 페루 펠리컨, 가마우지, 훔볼트 펭귄 등 다양한 새들과 함께 바다사자, 돌고래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파라카스에서 보트가 출발할 때 한 무리의 펠리컨들이 옆을 스쳤다. 그 펠리컨 떼를 따라가다 보니 해변에 새겨진 거대한 칸델라브라 지상화가 나타났다. 모래언덕에 그려진 길이 150m, 폭 50m인 거대한 그림이다. 이 지상화에는 다양한 추측이 전해지는데, 파라카스인들이 약초로 사용하는 선인장이라는 설과 남쪽의 나스카를 향해 새겨진 촛대라는 설도 있다. 또 누구는 해적의 작품이라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아직도 이 지상화가 언제 그려졌는지, 누구에 의해 그려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칸델라브라를 뒤로 하고 보트는 바다로 향했고 멀지 않은 거리에서 바예스타가 나타났다. 섬에 가까이 갈수록 구아노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파도가 깎고 뚫어놓은 아치와 동굴 주변을 돌면서 다양한 새와 펭귄, 바다사자 등을 구경한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이라 먹잇감이 풍부한데다 새와 바다사자 등을 해하려는 다른 동물들도 없다. 독특한 생태계를 지닌 섬은 새와 바다사자에겐 파라다이스 그 자체다. 이 섬에 ‘빈자의 갈라파고스’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섬을 새까맣게 덮고 있는 새떼의 규모에 놀라고, 기암 위에 올라앉은 바다사자 가족의 태평스러움에 미소를 짓는다. 생명의 약동에 전율케하는 섬이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나스카 라인
사막 도시 이카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날아 올랐다. 세계적인 미스터리 나스카 라인(Nazca Lines)을 굽어보기 위해서다. 450㎢가 넘는 광대한 땅에 새겨진 나스카 라인. 800개가 넘는 직선과 300개에 달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또 이중 70여 개는 특정 동물이나 식물 모양을 하고 있다. 하늘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거대한 그림들이다.
비행 출발 전 비행장 벽면에 붙어있는 나스카 지상화 등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정말 외계인들이 그려놓은 걸까. 아니면 영화 ‘아바타’의 토루크에 올라 탄 주인공처럼 안데스 콘도르를 타고 다닐 수 있었던 제왕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비행기가 이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스카 평원이 발 아래다. 1년에 비 오는 시간이 단 20분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곳 중 하나다. 나스카 유적이 지금껏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민낯의 사막, 그 바싹 마른 광활한 대지를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인상적이다. 기장의 안내 멘트가 시작됐다. 이제부터는 나스카 지상화를 확인하는 시간. 동체는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가며 급하게 기울어졌고, 창문 밖 비행기 날개 끝이 지상화를 가리켰다.
원숭이, 고래, 개 그림을 지나 외계인 모양이 나타나자 입이 딱 벌어졌다. 회색 바탕에 희미하게 새겨진 다른 그림들과 달리 붉은 빛의 토양에 새겨진 외계인은 또렷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한 손을 들고 인사하는 그 모습이 반갑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요동이 쳐도 비행기 창문 밖으로의 시선을 뗄 수 없다. 콘도르, 거미, 벌새 등 정교한 디자인의 나스카 지상화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평생을 바쳐 이 나스카 라인을 연구한 마리아 라이헤(1903~1998) 박사는 이 문양들이 천체운행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스카 라인의 선들은 태양과 행성과 별의 이동방향을, 동물의 이미지는 별자리를 상징한다는 것. 라이헤 박사의 천체운행도설 외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다양한 주장을 내놓았다. 나스카의 지상화는 UFO에 보내는 메시지라던가, 고대 나스카인들이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 관측해 그렸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까지 제기된 다양한 주장들은 거의 대부분 결함을 품고 있어 나스카 라인의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랜 연구가 진행됐음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페루의 사막이 품은 나스카 라인이다.
파라카스ㆍ이카(페루)=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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