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靖國)신사 폭발음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한국인이 9일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사건에 대한 총체적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사태 전개과정과 결과에 따라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일본경찰이 사건 초기부터 한국인 전모(27)씨를 수사선상에 올려놓은 가운데, 전씨가 이날 오전 10시쯤 도쿄 하네다공항에 전격 입국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전씨는 이날 오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예약한 상태였다. 당일치기 일정으로 나선 것이다. 경찰 당국은 전씨가 일본에 도착하기 전에 수상한 인물의 입국을 파악하는 시스템으로 그의 동향을 포착하고, 공항에서 그를 전격 체포했다. 전씨는 청색 겨울점퍼 차림에 옆머리를 짧게 치고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었다.
한일정부 간 공식 수사공조가 가동되기 전, 그가 스스로 일본에 재입국하면서 당장 그 배경이 관심이다. 전씨는 지난달 21일 일본에 입국했다가 야스쿠니 신사 남자화장실에서 폭발음이 생긴 사건 당일인 23일 귀국한 바 있다. 이후 경찰은 증거수집에 몰두하는 한편 한국 수사당국에 협조를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그러나 이날 오전 “그 남자가 일본에 온다”는 정보가 도쿄 경시청에 전해지자 청 내에선 일순간 충격이 퍼졌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전했다.
자진입국이 맞다면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선택일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전씨는 8일 보도된 일본 방송사와 전화통화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간 것은 인정하면서도 폭발음에 대해선 부인했다. 일본방송에선 “지난달 야스쿠니에 가셨나요?” “예, 가긴 갔죠” “혹시 직접 (폭발장치 설치를) 하신건가요?” “네? 글쎄요,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겠는데요” 등의 대화상황이 반복해 방영되고 있다.
전씨가 정치적 주장을 하기 위해 일본 재입국을 강행했을 경우도 배제하기 힘들다. 일본 내 일각에선 진보좌파 진영이나 일본의 우경화를 반대하는 세력, 박근혜 정부의 대일관계 개선 시도에 불만을 가진 세력 등을 놓고 애초부터 한국이나 중국인 소행을 의심해왔다. 그가 특정 집단소속일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일부 우익들은 일본 내 다른 한국인 공범 존재여부까지 의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일본경찰의 첫 조사에서 그가 폭발음 관련여부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부인한 후 재입국 이유에 대해선 “(한국에서 일본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나서)야스쿠니 신사 화장실을 보러 왔다”고 횡설수설한 것으로 알려져 ‘반일 열사’식의 공명심에 따른 행동일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 화장실에 떨어진 담배꽁초와 전씨가 머물던 호텔에 남겨진 담배꽁초의 유전자가 일치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일본경찰 당국은 아직 공식 확인하지 않고 있다.
건조물 침입혐의로 체포했지만 향후 폭발물단속 관련법규를 적용할 수도 있다. 또 현장에서 발견된 건전지 등의 구입경위를 규명하기 위해 한국에 형사사법공조 협조를 요청하는 수순도 예상된다.
피의자 신병이 일본으로 넘어간 이상 한일간 외교마찰 가능성은 줄었다. 2011년 12월 야스쿠니 신사의 문에 화염병을 던진 뒤 한국에 입국한 중국인 류창(劉强) 사건 때는 일본의 신병인도 요구를 한국법원이 거부해 양국관계 악화의 불씨로 작용한 바 있다. 외교부는 “전씨의 갑작스런 일본 행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며 현지 경찰서로 담당영사를 파견했다. 이번 사건이 심각한 외교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은 작지만 향후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공개될 전씨의 주장이나 처분에 따라 양국 여론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은 적지 않다. 당장 이날 오후 지요다(千代田)구 고지마치(麴町) 경찰서 앞엔 확성기를 든 우익들이 집결해 혐한 시위를 벌였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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