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집권 자민당이 창당 60주년을 맞았다. 자민당은 보수우위의 일본정치를 상징하는 공룡과 같은 정당이다. 선진민주주의국가 중 정권을 55년 가까이 독식해온 사례는 드물다. 한국도 1990년 초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탄생하면서 호남의 평민당을 고립시킨 채 한때 일본과 비슷한 구도가 성립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역동적인 한국 정치풍토에서 이 구도는 곧 붕괴됐다.
반면 일본에선 1996년 소선거제도로 정치개혁이 이뤄지면서 일대 변화가 온다. 자민당 내 파벌연합체적 성격이 급속히 약화하고 총리의 1강 독주체제가 구축돼갔다. 현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집권세력 내 견제기능을 하던 파벌의 역할이 쇠퇴하면서 가히 대통령제와 비슷한 변형된 총리제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이 시점에서 환갑을 맞은 자민당의 내력을 되돌아본다.
파벌 전성시대에서 아베 1강 체제로 여권내 역학 변모
자민당은 1955년 창당 이후 제25대 총재인 현재의 아베를 비롯해 22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1955년 11월15일 당시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의 ‘보수합동’으로 탄생한 이후 ‘55년 체제’란 말이 상징하듯 대부분 단독정권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전후 일본을 이끌었다. 의원내각제에서 여당의 총재가 총리가 되는 시스템은 일본 특유의 파벌정치를 양산했다. 총리 배출을 목표로 하는 당내파벌들이 다수파 형성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와중에 ‘금권정치의 온상’이란 비판을 받았다. 특히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ㆍ1972.7~1974.12) 총리 파벌은 풍부한 자금력을 무기로 절대권력을 누렸다.
반면 파벌은 자민당 내부의 ‘견제와 균형’을 작동시키는 순기능도 했다. 국정현안에 대해 매파와 비둘기파가 공존하며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파벌 자체가 온건파로 이뤄진 경우도 있었고 거대파벌 내 급진세력과 중도가 내부논쟁으로 부딪치는 일도 흔하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2012년 12월 아베 총리가 두 번째로 권력을 잡은 뒤 변하고 있다. 아베 정권 들어서 파벌정치가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근본원인은 중의원 소선거구제 도입이다. 제도의 특성상 총리에게 공천권한이 집중되면서 파벌이 이전만큼 힘을 갖지 못하게 됐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당선자를 내는 소선거구제는 당대당 대결이 부각되고 정치자금배분에서도 당 총재의 기능이 강화된다. 파벌 영수끼리 합의하는 공천시스템을 당 총재가 독식하는 쪽으로 바뀌어 갔다. 파벌은 소속의원들의 정보교환 모임쯤으로 위상이 급격히 떨어지는 과정이다.
총리가 당에 앞서 정책과 인사를 주도하는 ‘정고당저(政高黨低)’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자민당의 얼굴’인 현직 총리가 일정한 지지율만 유지한다면 당에서 사사건건 제동을 걸기 어렵다. 지난 9월 총재선거에선 전체 파벌이 아베 총리를 지지해 무투표 당선되기도 했다. 파벌의 존재감이 얼마나 왜소해졌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자민당 역사상 가장 우경화 된 아베 집권세력
자민당에서 집단지도체제적 성격이 약화된 배경에는 소선구제와 아베 총리의 개인인기뿐만 아니라 일본을 둘러싼 대외환경의 변화도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우산아래 고도경제성장을 이뤄온 자민당 정권이 최근 중국의 급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란 대외 환경의 변화 속에서 더욱 입지가 강화되고 있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이 현실화됐고 올해 9월엔 안보관련법을 강행 통과시켜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우익의 염원이 실현됐다. 중국의 부상을 축으로 하는 국제정세 변화가 아베 정권의 매파적 정책을 지탱하는 토양이 된 셈이다.
급기야 침략의 과거 역사문제까지 수면위로 끄집어내 전후 체제를 완전히 탈피하겠다는 목표를 가시화하고 있다. 자민당은 청일전쟁(1894~1895년) 이후의 역사를 재검증하고 학습하는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생각하는 본부’를 출범시켰다. 전범국가로서 이른바 ‘자학적 역사관’을 극복하고 팽창적 자부심을 되찾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역사검증본부는 태평양전쟁 일본인 A급 전범을 단죄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을 핵심 검증대상으로 삼고, 일본이 태평양 전쟁으로 돌입한 경위, 중일간 대립의 불씨가 되고 있는 ‘난징(南京)대학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도 테마로 다룰 예정이다.
외부시선을 의식해 본부장을 온건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간사장이 맡았지만, 아베 총리의 측근으로 강경우익인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정무조사회장이 본부장대리로 실무를 조정한다. 또 이미 사문화됐지만 전쟁을 금지하고 있는 ‘평화헌법’마저 고치기 위해 헌법개정추진본부도 발족했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아베 내각은 자민당 역사상 가장 오른쪽에 가까이 간 정권”(마이니치신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총리와 그 주변이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빠져있고 이를 영향 받아 자민당의 ‘단색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복고적인 우파에서 자유주의 지향 집단까지 다양한 스팩트럼을 배경으로 내부경쟁하던 기존 자민당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헌법학자들 대부분이 위헌이라고 반대했던 안보법안을 밀어붙인 경우가 가장 상징적이다. 이처럼 각계의 정치적 이해를 흡수하는 ‘포괄정당’으로서 기능이 사라지는데 대한 경계심이 아베 정권 들어 크게 증가하는 실정이다.
‘포스트 아베’자민당 차기 그룹은 누구?
지난 9월 아베 총리가 임기 3년의 자민당 총재직에 재선됐지만, 의회해산과 총선실시가 수시로 반복되는 일본정치의 특성상 ‘포스트 아베’그룹에 대한 관심도 막 생겨나고 있다. 일본에선 지지율 30%대가 무너지면 정권이 퇴진하고 조기총선으로 이어지는 게 관례다. 현재로선 2012년 총재선거 당시 아베의 최대라이벌이었고 최근 독자파벌을 결성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지방창생담당장관, 야당시절 당총재를 지냈던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간사장, 아소 다로(麻生太?) 부총리 겸 재무장관, 아베 총리의 ‘복심’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등이 거론된다.
아베 총리는 이중 임기 내내 충실히 자신을 내조해온 스가 장관을 지지할 가능성이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 언급된다. 아베 총리가 각별히 챙기는 것으로 소문난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자민당 정조회장을 요직에 앉히는 것을 전제로, 자신의 정치색깔을 계승할 적임자로 스가 장관을 밀 것이란 가설이다. 아베 총리가 속해있고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細田)파가 차기 당총재를 내정하면 그가 쉽게 차기 총리가 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주목받는 인물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의 차남으로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ㆍ34) 자민당 농림부회장이다. 당장 총리후보로 직행하기 어려울 경우 차기 총재선거에서 이시바 지방장관을 지지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럴 경우 이시바ㆍ고이즈미 연대그룹이 급부상할 수 있다.
다니가키 간사장도 빼놓을 수 없는 차기 그룹이다. 자민당의 장기집권 비결로 설명되는 이른바 ‘강경ㆍ온건 순환 권력설’때문이다. 당내 파벌 중 정통 우파쪽이 정권을 잡으면 다음 총리는 상대적 중도우파가 맡아왔다. 자민당은 이념적 밸런스를 잡으면서 정권기반을 안정적으로 강화해온 게 사실이다. 이 원리를 따른다면 아베 총리 다음으론 노선이 상대적으로 왼쪽인 다니가키 간사장이 유력하다는 주장이다.
다니가키 그룹의 좌장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이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총무회장으로 지난 5월 3,000명을 인솔해 방중,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면담하고 왔다. 다니가키 정권이 탄생할 경우 중일, 한일관계가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비슷한 시각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장관을 주목하는 시각 역시 만만치 않다. 당내 대표적 비둘기파로 분류되는데다 전통적으로 외교수장을 맡은 인물군이 총리가 되는 전례가 많았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들 모두 아직은 큰 의미를 찾기 힘들다. 자민당 60년사를 통틀어도 지금 아베 총리의 탄탄한 입지는 국제환경이나 중국의 부상, 정치제도의 변화 등에서 과거모델을 기초로 한 가설을 적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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