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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라!

입력
2015.12.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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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위한 서재, 드레스룸, 주방…남심 향한 공간설계 붐

올 상반기 롯데건설의 ‘롯데캐슬 골드파크3차’ 아파트 견본주택 품평회장. 50세가 넘은 임원들은 주방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반 주방 작업대(85㎝)보다 높이를 5㎝ 높인 ‘키 높이 주방가구’를 보고 질문들이 쏟아졌다. “과연 저렇게 바꾸면 쓰임새가 있을까요?” “이러다 반응이 안 좋으면 어떻게 하죠?” 주방은 여성의 공간, 따라서 여성의 키에 맞춘 낮은 주방대가 더 인기를 끌 것이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린 물음들이었다.

하지만 롯데건설 디자인연구소팀은 이 키 높이 선반대를 선택형으로 관철시켰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에어컨 등 옵션계약을 진행한 청약자(879가구)의 45%(392가구)가 이 주방대를 선택했다. 이민정 디자인팀장은 “모델하우스에 와서 직접 보고 계약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과거 5060세대에서 지금은 3040세대로 젊어졌고 이들 대부분이 맞벌이 부부”라며 “남편도 설거지부터 청소까지 가사일을 동등하게 하는 시대로 변했기 때문에 주방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전유물과 같던 집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전업주부 여성이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하는 대신 내부 인테리어와 가구 배치, 심지어 방 배정까지 모두 혼자 판단해 결정하곤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 1등 남편감이 됐고, 패션과 외모 가꾸기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그루밍족’도 트렌드의 한 축이 됐다. 또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집안일은 남편과 아내의 공동 책임이 됐다. 시대 변화에 민감한 건설사들도 이런 흐름에 맞춰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는 공간 설계에 열을 올리고 있다.

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남성 맞춤 공간’이 있는 아파트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이 롯데건설이다. 롯데건설은 지난달 강원도 원주시 단계동에서 분양한 ‘원주 롯데캐슬 더 퍼스트’와 경기도 안산시 군자동에서 공급한 ‘안산롯데캐슬 더 퍼스트’ 등 올 들어 총 8개 단지에 주방작업대 높이를 기존 85㎝에서 90㎝로 높인 ‘드림키친’을 건설사 최초로 적용했다. 또 지난달 분양한 ‘성복역 롯데캐슬’ 단지 전용면적 99㎡의 경우에는 안방에 드레스룸을 2개나 만들었다. 아내와 남편용을 분리한 것이다. “안방 붙박이장 옷걸이에는 죄다 아내 것만 있고 내 옷들은 구겨진 채 구석에 박혀 있다”는 회사 내부 30대 남자 직원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주방부터 안방까지 남성을 위한 공간에 공을 들인 이 단지는 청약 때 평균 10.5대 1로 1순위 마감했다.

본인만의 화장대, 옷장을 원하는 남성들이 많아지면서 남성용 드레스룸을 적용하는 건설사들이 특히 늘어나는 추세다. 포스코건설은 지난해 ‘갈매 더샵 나인힐스’ 분양 당시 선보인 ‘미스터 파우더장’이 남성 고객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자 올해 5월 ‘북한산 더 샵’과 6월 ‘공덕 더 샵’에 남성용 넥타이와 벨트, 화장품 등을 둘 수 있는 이 파우더장을 배치했다. SK건설도 비슷한 용도의 ‘미스터 캐비닛’을 분양 상품에 적용하고 있다.

단지 지하나 현관에 대형 창고를 넣은 단지도 남성 입주자들에게 호응이 좋다. 대림산업이 올 상반기 분양한 ‘e편한세상 신촌’이나 현대건설이 공급한 ‘힐스테이트 태전’은 현관 옆에 대형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대림산업 측은 “남성이 주로 쓰는 낚시, 골프 장비 등 부피가 큰 짐을 별도로 수납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보편적으로 남성들이 선호하는 서재는 발코니 확장 등으로 생긴 서비스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반도건설은 ‘다산 신도시 반도유보라’ 등 올해 분양한 단지 대부분에 안방 옆 작은 공간을 만들고 이곳을 서재로 꾸몄다.

이런 ‘남심(男心)’ 겨냥 설계는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분양업체 관계자는 “과거 아파트 설계는 주부를 겨냥하거나 자녀 교육에 특화되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젊은 넥타이부대가 견본주택을 적극적으로 찾고 계약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이들 수요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며 “공간도 서재 정도만 꾸미던 것에서 드레스룸과 주방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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