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환기 안돼 밖에서 피워
"흡연자·비흡연자 모두 불만"
그마저 드물고 설비 지침도 없어
8일 오전 서울역사에서 서울역 광장으로 연결되는 1번 출구. 평소라면 하루 수만 명이 이곳을 오가지만 ‘역사 내 담배 연기 유입으로 인해 출입문 이용을 중지합니다’라는 안내문과 함께 출구가 폐쇄돼 있다. 이 출구에서 20m 가량 떨어진 흡연실 주변에서 나온 담배 연기가 출구 앞 계단을 타고 역사 안으로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흡연실 앞쪽에 서 있는 ‘금연’표지판이 무색하게 흡연실 앞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흡연실이 있어도 비흡연자들은 고역이다.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김민지(33)씨는 “아이가 있어 흡연실을 피해 빙 둘러 왔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정은선(36)씨는 “흡연실이 설치된 곳은 출입구 인근이라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라며 “연기나 담뱃재가 아이들에게 해를 끼칠까 신경이 곤두선다”고 말했다.
흡연실이 있는데도 흡연자들은 왜 밖에서 담배를 피는 것일까. 직접 들어가 봤더니 그 이유를 금세 짐작할 수 있었다. 14평(48㎡) 남짓한 흡연실 안에 들어서니 매캐한 연기가 눈과 코를 자극했다. 창가 앞에 섰는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출입구와 창문 일부가 열려 있고, 천장에 환풍기가 달려있지만 10여 명이 돌아가며 계속해서 뿜어대는 담배 연기를 정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머리카락과 옷에 담배 냄새가 가득 뱄다. 흡연실 앞에서 담배를 태우던 김모(51)씨는 “흡연자이지만 연기가 자욱한 흡연실에서는 도저히 담배를 필 엄두가 안 난다”며 “공간이 넓고 환기가 잘 되는 흡연실이 있다면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내 금연구역 확대로 길거리 흡연이 늘어나면서 실외 간접흡연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실외에 제대로 된 흡연실이 없다 보니 비흡연자는 비흡연자대로, 흡연자는 흡연자대로 불만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길거리 간접흡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제대로 된 흡연실을 설치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8일 서울시에 따르면 2012년 3,117곳이었던 실외 금연구역은 올해(10월 말 기준) 1만3,306곳으로 3년 간 3배 증가했다. 반면 합법적인 실외 흡연공간은 8개 구 26 곳(8월 기준)에 불과하다. 나머지 17개 구에는 실외 흡연시설이 아예 없다. 최비오 한국담배소비자협회 정책부장은 “담배가 합법적으로 제조ㆍ유통ㆍ판매되고 있는 상황인데다, 비흡연자들의 건강권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흡연 구역 설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흡연실 설치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기존 흡연실이 흡연자들로부터 외면 당하는 것도 문제다. ‘출입구로부터 10m 이상 떨어진 곳에 자연 환기가 가능하도록(부득이한 경우 별도 환기시설 설치) 설치한다’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이 관련 규정의 전부다.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들을 보면 자연 환기를 강조하기 위해 ‘지붕이 있으면 4면을 개방해야 한다’는 등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이라며 “흡연실이 꼭 필요한 곳에는 입지 조건, 환기 문제 등을 고려한 제대로 된 흡연시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호주, 영국 등은 ‘아이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등 입지 조건도 엄격히 따져 흡연실을 설치하도록 돼 있다.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흡연실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며 “세세한 흡연실 설치 규정은 오히려 흡연을 부추킬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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