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할머니 소송’으로 공론화
존엄사나 안락사 등과는 달라
환자 본인이 원하거나 가족 전원이 동의할 경우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연명의료법안이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면서, 18년간 지속돼 왔던 연명의료 중단 논란은 일단락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연명의료 논란을 촉발시킨 사건은 1997년 회복가능성이 있는데도 퇴원시켜 환자가 사망하자 환자 가족과 의료진에게 살인죄가 선고된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이후 2008년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 할머니(2010년 사망)의 가족들이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을 상대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김 할머니가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게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9년 5월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 전기가 마련된다. 대법원은 당시 “국가는 입법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해 제도화 논의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입법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0년 종교계ㆍ의료계ㆍ법조계ㆍ시민단체 전문가들이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 제도화 방안을 논의했지만,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을 제3자인 가족들이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 종교계가 반대하면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2013년 전문가 논의를 바탕으로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가족 등 제3자에 의한 환자의 뜻 추정과 대리의사결정을 허용하는 ‘연명의료중단 권고안’을 제시하면서 입법화의 골격이 마련됐다.
이 같은 논란 끝에 이날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호스피스ㆍ완화의료의 이용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은 가족들이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사전의 뜻을 추정해 이를 결정하도록 했다.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뜻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라도 가족 전원이 동의하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입법화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성숙됐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9명(88.9%)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법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보건복지부의 ‘국민인식도 조사’(2011년)에서도 응답자의 72%가 연명의료 중단에 찬성했다. 해외에도 관련 법이 지정된 국가가 적지 않다. 미국의 경우 41개 주에 사전의료의향서 관련법이 있고, 대만은 2000년, 영국과 프랑스는 2005년, 오스트리아는 2006년에 환자 자기결정법을 제정했다.
연명의료 중단은 통상 ‘안락사’ 혹은 ‘존엄사’ 허용과 혼용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안락사와 존엄사는 환자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적극적 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의사가 환자를 죽음에 이르는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개념이 포함돼 있다. 반면 연명의료는 이런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연명의료법안은 심폐소생술ㆍ혈액투석ㆍ항암제 투여 등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치료효과 없이 임종 시기만 지연시키는 행위만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진통제 투여 등 통증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물, 산소 등의 공급은 지속해야 한다. 한편 이 법안에는 현행 암환자에 국한됐던 호스피스(완화의료)서비스 이용 대상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변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법제화의 1차 관문을 넘었지만 법안 내용에 대한 논란은 남아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연합회 회원의 85%가 연명의료 관련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할 만큼 입법은 긍정적이라고 본다”면서도 “무연고자의 경우 병원 윤리위원회가 연명의료 중단을 의결할 수 있게 한 조항은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이 법은 호스피스 관련 시설 확충 등에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해 공포 후 2년 뒤에 시행하기로 했다. 내년 2월 임시국회 통과 후 3월 공포될 경우, 2018년 3월부터 시행된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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