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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하얀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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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하얀 피

입력
2015.12.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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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피가 하얄지도 모른다고 상상할 때가 있다. 평상시엔 붉지만 마음이 뭔가에 언치거나 놀랐을 때. 또는 자신에 대한 오래된 인식들이 해체되거나 분열하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래서 음식에 체했을 때처럼 부러 손가락을 따본 적 있다. 피는 여지없이 붉기만 했다. 그저 허튼 생각일 뿐일까. 흰 피가 흐르는 사람이나 동물을 본 적도 없고, 그런 소문조차 들은 적 없지만, 한번 떠오른 망상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몸에서 하얀 피가 흐른다면 사람은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그 느낌을 가지고 타인을 대하거나 뭔가를 만들어간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색감의 세상이 탄생하지 않을까 등등. 모종의 우울에 빠져있거나 일상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환희를 느끼거나 할 때면 이 생각이 더 강해진다. 피가 붉은 건 자연의 분명한 이치지만, 기본 성정이나 상황에 따라 사람이 갖기 다른 안색을 갖듯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자신만의 변이가 삶의 한 순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 너는 샛노란 피, 나는 새하얀 피, 그렇게 화학 작용해 상큼한 바나나우유 빛깔로 세상을 다시 색칠해 보면 어떨까 하는 순연한 헛꿈. 망상일지라도, 그게 불가능한 만큼 가능으로 바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또 손을 따봤다. 사진을 찍고 흑백으로 바꿨더니 피는 검은 빛. 그걸 다시 네거티브로 바꾼다면…. 예술의 궁극지대가 거기 아닐까 싶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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