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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의 비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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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의 비장미

입력
2015.12.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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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는 마지막 남은 조선 호랑이와 포수의 사연을 붓 삼아 일제시대 한 풍경을 스크린에 그려낸다. NEW 제공
'대호'는 마지막 남은 조선 호랑이와 포수의 사연을 붓 삼아 일제시대 한 풍경을 스크린에 그려낸다. NEW 제공

외면이 뿜는 기부터 만만치 않다. 선 굵은 배우 최민식이 주연을 맡고 개성 강한 정만식 김상호가 조연을 했다. 연출은 박훈정 감독 몫이었다. ‘부당거래’와 ‘악마를 보았다’(이상 2010) 등의 각본을 담당하며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고, ‘신세계’(2013)로 단번에 차세대 감독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사연 많은 얼굴을 지닌 배우들과 하드보일드한 영화들에서 재능을 드러낸 감독이 만난 이 영화는 제목도 남다르다. 큰 호랑이라는 뜻을 품은 ‘대호’. 호랑이가 중심 캐릭터로 등장하니 선이 굵어도 이만저만 굵은 게 아니다. 제작비 144억원도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다. 화려하고 드센 외면만으로도 올 겨울 화제작 중 화제작이다.

배경은 일제시대다. 일본군은 지리산의 마지막 호랑이 잡기에 몰두한다. 직업적 종말을 눈앞에 둔 조선 포수들을 채근해 ‘조선 호랑이의 왕’ ‘지리산 산군’이란 호칭이 따르는 거대한 애꾸눈 호랑이 대호를 잡으려 하나 매번 허탕이다. 대호와 얄궂은 운명을 지닌 왕년의 최고 명포수 천만덕(최민식)을 꾀어 호랑이 사냥에 나서려 하나 만덕은 요지부동이다. 산군은 건들면 안 된다는 게 만덕의 논리. 대호와 구원을 지닌 구경(정만식)은 복수심과 물욕에 차 만덕의 아들을 미끼 삼으려 하고 대호와 만덕은 다시 원치 않는 운명 속으로 내던져진다.

영화는 만덕과 대호의 대결이 스크린을 채우리라는 보편적 예감을 배신한다. 만덕과 대호는 피로 물든 악연을 맺었으나 서로를 함부로 해할 수 없는 특수한 관계다. 영화는 호랑이를 잡으려는 구경 일행과 대호의 대결을 에너지 삼아 전진하며 만덕과 대호 사이에 감춰진 사연을 조금씩 드러낸다. 커다란 덩치로 사냥꾼들을 도리어 사냥하는 대호의 활극이 서스펜스를 만들고, 만덕 부자의 애절한 관계가 가슴을 누른다.

구경 일행은 일본군의 채근과 복수심에 대호 사냥에 나서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NEW 제공
구경 일행은 일본군의 채근과 복수심에 대호 사냥에 나서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NEW 제공

영화는 시대에 몰려 낭떠러지에 몰린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아내를 잃고 사양길을 오래도록 걸어온 포수 만덕과, 산군이라 불리며 먹이사슬의 우두머리로 생태계를 조절해왔으나 문명으로 포장된 일제에 의해 멸살 위기에 놓인 대호는 다른 듯 서로 닮았다. 영화는 인생 석양에 선 두 존재의 운명을 그리며 시간에 묻힌 일제시대의 애잔한 한 풍경을 복원한다. 영화는 그렇게 맹수 사냥의 긴장감이나 복수의 통렬함 대신 사라지는 것의 비장함에 방점을 찍는다. 인간과 호랑이의 명징한 대결 구도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한 관객이라면 실망할 대목이다.

호랑이를 그려낸 컴퓨터그래픽(CG)은 탁월하다가도 평범하고 가끔은 실망스럽다. 관객을 덮칠 듯한 자세로 덩치를 드러내는 대호가 긴장감을 제조하기도 하나 뚝뚝 끊기는 몸동작이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커다란 호랑이’라는 제목의 영화라면 실감나는 호랑이 구현에 좀 더 신경 썼어야 하지 않을까. 16일 개봉, 12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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