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유가가 폭락하는데도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의 ‘감산 불가’ 방침은 요지부동이다. 단기적 수익악화를 감수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위협할 수 있는 미국 셰일산업을 고사시키기 위한 고육책이란 해석이 많다. 하지만 공급과잉이 심화할 경우 세계경제 전반의 위축은 물론 OPEC 내 부도국가 속출 가능성이 커 과잉생산ㆍ저유가 전략이 마냥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제유가는 7일(현지시간) 세계 금융위기의 한파가 몰아쳤던 2009년 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OPEC 회원국들이 지난 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정례회의에서 원유 생산량 감산 합의에 실패한 데 따른 것이다. 12개 OPEC 회원국들은 그간 일일 생산한도를 3,000만배럴로 정했지만, 실제로는 3,150만배럴을 생산해왔다. 이에 따라 매일 150만~200만배럴이 과잉공급되면서 재고량이 30억배럴에 달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 급락에도 불구하고 OPEC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기로 한 것은 다분히 미국 셰일산업을 겨냥한 측면이 크다. 배럴당 생산원가가 50~60달러로 기존 원유보다 비싼 셰일가스 업체들이 유가가 100달러를 넘나들던 2013년 이후 속속 등장했는데, OPEC의 저유가 공세에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셰일업계는 저유가에 따른 타격을 적잖이 받고 있다. 유전 정보 서비스업체인 베이커휴스에 따르면 지난 4일 현재 미국 내 셰일가스 시추공 수는 737개로 1년 전(1,920)에 비해 61.6%나 급감했다. 또 올 상반기에만 셰일가스 관련 업체 16개가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를 선언했다.
하지만 OPEC의 저유가 전략은 세계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국가부도 위기를 벗어나려는 회원국 사이의 ‘치킨게임’ 양상을 불러올 수 있다. OPEC 회원국들 스스로에게도 ‘양날의 칼’인 셈이다.
OPEC이 과잉생산을 지속할 경우 저성장에 시달리고 있는 세계경제에는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유로존의 전기 대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들어 1분기 0.5%, 2분기 0.4%, 3분기 0.3% 등 줄곧 내림세다. 기준금리 인상을 코 앞에 둔 미국도 물가가 예상보다 오르지 않아 고심하고 있다. 자칫 세계경제 전체가 장기침체의 늪에 빠져들 수도 있는 것이다.
유가가 배럴당 20달러선까지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도 일부 OPEC 회원국들이 재정 위기 타개책으로 증산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 역시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와 나이지리아 등은 할당량을 초과하는 생산량을 유지키로 했고, 이란ㆍ이라크 등은 할당량 설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박리다매’를 해서라도 나라 곳간을 메우겠다는 것인데, 이는 ‘과잉생산→유가 하락→과잉생산’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양정대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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