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은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배우다. 연기력은 진작 인정받았고 최근 흥행은 더할 나위 없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국제시장’은 1,426만 1,224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았고, 지난 여름 선보인 ‘베테랑’은 1,341만 3,671명이 찾았다. 각각 역대 흥행 순위 2, 3위에 해당하는 성과다. 한 배우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두 편이 연달아 1,000만 고지에 오르기는 황정민이 처음이다.
하지만 8일 오전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황정민은 “배우로서 아직 오르지 못한 봉우리가 많기만 하다”고 말했다. 최근 그의 행보가 이러한 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16일 겨울 대작 ‘히말라야’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그는 주연과 연출을 겸한 뮤지컬 ‘오케피’(18일 개막)의 막바지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영화 ‘검사외전’과 ‘아수라’를 촬영 중이고 나홍진(‘추적자’ ‘황해’) 감독의 신작 ‘곡성’은 후반 작업 중이다. 그는 “좋아서 하는 일이니 힘들지는 않고 재미있기만 하다”며 환히 웃었다.
에베레스트에서 하산하다 숨진 후배 박무택의 시신을 수습한 엄홍길 대장의 실화를 그린 ‘히말라야’는 진용이 화려하다. 황정민(엄홍길) 정우(박무택) 주연에 조성하 라미란 김원해 김인권 등 주연 못지않은 중량급 조연이 배치됐다. 제작비는 100억원. 지난해 여름 ‘해적: 바다로 간 산적’(866만 6,208명)으로 관객을 즐겁게 한 이석훈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다. “황정민이 세 번 연속 1,000만 영화에 도전한다”는 섣부른 예측이 나올 만하다.
고봉을 묵묵히 오르내리는 산악인들의 우정과 의리를 스크린에 새긴 ‘히말라야’에는 배우와 스태프의 고난이 역력하다. 산소가 희박한 네팔 히말라야 산맥 해발 4,000m 지점에서 고산병을 이겨 내며 촬영했고 프랑스 몽블랑의 눈보라와도 싸웠다. 황정민은 “대장 역할을 하다 보니 촬영장에서도 책임감이 막중했다”며 “몽블랑 현지에서 안전대원들에게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촬영했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이 끝난 뒤 남양주종합촬영장 뒷산에서 통곡했다”며 “17세 때 첫 연극 공연을 마치고 무지 울고선 처음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촬영 전 산에 대해 많이 알게 되리라 기대했는데 정작 촬영을 하면서 산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배우 스태프 남녀 구분 없이 없이 짐을 이고 지며 해발 4,000m까지 올라가고 스키화 신고 1시간30분 걸어 숙소로 돌아가는 생활을 하니 팀워크의 중요성”이 새삼스러워졌다. 60명가량이 3m 간격으로 줄을 묶고 움직이며 촬영하기도 했고, 숙소로 돌아와선 “다 같이 살아 돌아왔다며 만세 지르고 소리 지르다 술을 마시기도 했다.” “속에 있는 말 좀 해 주세요”라고 다그쳐도 묵묵부답이던 엄홍길 대장의 마음도 이해하게 됐다. “죽음과 삶이 종이 한 장 차이인 곳에서 대장으로 힘들었던 점, 감추고 싶은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알겠더라구요. 전쟁터에 다녀온 사람들이 말을 아끼는 것처럼요.”
황정민은 “배우 황정민이 아닌 산악인의 느낌을 관객에게 전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고산지대 장면에서 그의 입에선 거친 쇳소리가 나는데 “히말라야의 찬 공기에 목이 갈라지는 걸 표현하고 싶어 3일 동안 고함을 내리 질러 쉰 목소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촬영 뒤 녹음할 때도 집에서 3일 동안 소리를 쳤다. 몸은 정확하다”며 웃었다.
배우로서의 삶을 산악인에 빗대자 그는 “작품 할 때마다 산 너머 산”이라며 “당장 눈 앞에 놓인 산은 ‘오케피’”라고 했다. “일단 하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니까요. 저는 작품을 시작하면 지름길 아닌 정도(正道)만 생각해요. 제가 지금까지 버텨온 힘입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