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만으로 시선을 확 잡아 끄는 차들이 있습니다. 대개 유선형으로 잘 빠진 고가의 스포츠카들이 이런 부류인데 BMW에도 비슷한 게 하나 있죠. 친환경차 서브 브랜드 ‘BMW i’의 두 번째 모델 BMW i8입니다. BMW가 처음으로 내놓은 플러그 인(충전식) 하이브리드차(PHEV)이자 세계 최초의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스포츠카입니다.
2011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미션 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에 처음 등장한 i8 콘셉트카는 미래에서 온 듯한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2012년 파리모터쇼에서 선보였고 드디어 지난해 중순 출시됐습니다. 국내에서는 올해 3월말부터 판매됐지만 워낙 비싼 차여서 지난달에 잠시나마 운전석에 엉덩이를 대보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시승한 모델은 프로토닉 블루(Protonic Blue) 컬러였습니다. 외형은 콘셉트카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타이어 휠은 차이가 좀 있습니다. 공기 저항을 줄이고 연비를 높이기 위해 전기자동차나 하이브리드차에 구멍이 적고 표면적이 넓은 휠을 끼우는데 i8 휠은 직경이 20인치나 되지만 디자인이 일반 내연기관 차와 같았습니다.
i8 차체는 여러 장의 판재가 겹쳐진 형태입니다. 단단한 근육 같으면서 기존 차들과 느낌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사람이 탑승하는 라이프 모듈은 신소재인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으로 제작됐습니다. CFRP는 차체 소재 중 가장 가벼워 알루미늄보다 중량이 30%나 덜 나갑니다. 그만큼 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쌉니다. 기아자동차 올 뉴 쏘렌토 파노라마 선루프도 CFRP입니다. 국산차들은 아직 부분적으로 소량만 사용합니다.
i8의 문은 위로 열리는 시저(scissor) 도어입니다. 날개처럼 하늘로 쭉 뻗은 양 문짝은 포스가 상당합니다. 헌데 운전석으로 들어가려니 이건 ‘앉는다’기 보다 ‘몸을 구겨 넣는’ 기분이었습니다. 키가 크고 덩치 좀 있는 사람들에게 타고 내리는 자체가 고역일 것 같습니다. 가솔린 엔진이 뒤쪽에 탑재돼 2열에 사람이 타는 것도 어려워 보입니다.
차고가 워낙 낮아 고속도로 톨게이트 카드를 뽑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시트가 몸을 꽉 잡아주는 운전석 자체는 편안했습니다. 내부는 BMW 특유의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이어 받아 미래지향적인 느낌까지 물씬 풍겼습니다.
경기 하남시 미사동에서 시동을 걸고 경기동부 국도와 고속도로를 약 85㎞ 달려 봤습니다. 남아 있던 배터리가 7%에 불과해 전기차 모드(eDrive)를 오래 경험하진 못했지만 전기차로 주행해도 가속력은 내연기관차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고속 주행에서는 4가지 모드 중 굳이 스포츠를 선택하지 않아도 웬만한 차는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속도가 발군입니다. 병렬식 하이브리드로 뒷바퀴는 1.5ℓ 가솔린 터보 엔진(231마력)이 밀고, 앞 바퀴는 전기모터(131마력)가 끌어주니 파워야 뭐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제로백)은 4.4초입니다.
다만 낮은 차고와 단단한 서스펜션으로 인해 과속방지턱의 충격은 꽤 크게 전해졌습니다. 과속방지턱이 차고 넘치는 국내 도로에서는 이점이 상당한 마이너스 요인이 될 듯 합니다. 또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속도가 현저히 줄어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는 처음에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전기차인 BMW i3도 마찬가지인데, 한편으로는 바퀴의 제동력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회생제동이 잘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i8은 배터리 충전량이 제로(0)가 된 상태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가속페달 조작 없이 몇 번 내려오니까 충전량이 금세 6%까지 올라갔습니다.
짧은 시승이었지만 i8은 PHEV보다 스포츠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PHEV의 최고 미덕은 하이브리드차(HEV)보다 진일보한 경제성이기 때문이죠. 외부 충전으로 전기 주행 범위를 늘려 연비를 높이고, 배출가스를 줄여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게 PHEV의 본질이 아닐까요.
게다가 외형과 놀라운 성능을 감안하면 매일 끌고 다닐만한 차는 아닙니다. 포르쉐나 페라리처럼 때때로 짜릿한 드라이빙을 즐기기 위한 세컨카가 적당해 보입니다. 1억9,900만원이란 엄청난 가격 역시 절대로 실용적이지 않습니다.
7.1㎾h인 리튬 이온 배터리 용량도 그렇습니다. 1.4~4.2㎾h인 하이브리드차의 배터리 용량보다는 크지만 가격이 훨씬 싼 현대자동차 쏘나타 PHEV의 9.8㎾h보다 적습니다. 전기만으로 주행 가능한 거리도 i8은 최대 37㎞로, 쏘나타 PHEV(44㎞)에 비해 짧습니다. 이와 달리 전기모터는 최고출력이 131마력으로 쏘나타 PHEV(68마력)보다 2배 이상 강합니다. 연비를 좌우하는 배터리보다는 퍼포먼스의 질과 관련된 전기모터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이해됩니다.
i8은 올해 국내에서 약 200대 계약이 이뤄졌다고, 120대 정도가 인도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새로운 PHEV들이 쏟아져 나오고, 가격과 차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i8을 살만한 사람은 이미 웬만큼 사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BMW 코리아 관계자도 “많이 팔려고 만든 차가 아니다”고 했습니다.
BMW는 최고 성능의 디젤 엔진을 앞세워 메르세데스-벤츠와 자웅을 겨루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올라섰지만 하이브리드차(HEV)는 뒤쳐졌죠. 일본 토요타가 1997년 세계 최초의 HEV 프리우스를 출시한 데 비해 BMW는 2009년에야 ‘액티브 하이브리드 X6’를 선보였습니다. PHEV도 세계 최초는 2011년 12월 출시된 토요타의 프리우스 PHEV이고요.
2011년 열린 도쿄모터쇼에서 BMW와 토요타는 기술 교류 협약을 맺는다고 발표했습니다.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와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BMW는 경량화 등 소재 기술을 서로 제공하는 내용이죠. (이후 토요타 하이브리드 기술이 실제로 BMW 차에 적용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맥락 상 i8은 BMW가 PHEV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차로 보입니다. “더 잘 할 수 있고, 우리가 만들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요.
BMW 코리아는 곧 다른 PHEV들을 잇따라 내놓을 계획입니다. BMW i 브랜드는 아니지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뉴 X5 xDrive40e’, 3시리즈의 PHEV 버전인 ‘330e PHEV’, 7시리즈의 PHEV 모델 ‘740e’의 내년 출시 일정이 잡혔습니다. 전기모터가 트랜스미션 내부로 들어가 병렬식보다 공간 효율성이 높은 직렬식 PHEV 기술들도 적용된다고 합니다. 판매량을 떠나 디젤 엔진의 전성기를 달린 BMW마저도 현실적인 친환경차인 PHEV 시대로 접어드는 터닝 포인트가 i8인 것은 분명합니다.
글ㆍ사진=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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