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과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만나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 아마 겨울대작 ‘히말라야’(16일 개봉)를 바라보며 갖게 되는 의문일 것이다.
‘히말라야’는 익숙한 진용으로 꾸려져 있다. 황정민이 주연하고 라미란이 보조를 맞추는데 제작사는 제이케이필름이다. ‘해운대’와 ‘국제시장’으로 두 편의 1,000만 영화를 처음으로 빚어낸 윤제균 감독이 설립하고 대표로 있는 영화사다. ‘댄싱퀸’(2012)과 ‘내 깡패 같은 애인’(2010), ‘스파이’(2013) 등 만드는 영화 대부분이 웃음에 많은 비중을 내줬다. 엉뚱한 유머로 관객을 웃기곤 하는 윤 감독의 인장이 제이케이필름 영화들에 곧잘 스며 있곤 하다. 웃음에만 전념하지 않고 양념처럼, 공식처럼 눈물을 강요하는 것도 이 영화사 영화들의 특징이다. ‘히말라야’의 정서를 예단케 하는 공통분모이다.
더군다나 ‘히말라야’의 메가폰은 이석훈 감독이 쥐었다. ‘방과후 옥상’(2006)으로 데뷔해 ‘두 얼굴의 여친’(2007), ‘댄싱퀸’ 등으로 이력을 이어오며 충무로에선 흔치 않게 코미디에만 매달렸다. 지난해 여름 개봉한 ‘해적’은 대중의 가장 큰 호응을 이끌어낸, 이 감독 영화세계의 정점이었다.
그렇다면 코미디에 강한 제작사와 코미디 전문 감독이 만난 ‘히말라야’는 코미디일까. 아니면 적어도 ‘웃음 반 큰술에, 눈물 반 큰술’이라는 충무로 상업영화의 레시피에 충실한 영화일까. 힌트 하나. ‘히말라야’는 에베레스트 등정 뒤 하산하다 숨진 후배 박무택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건 등반에 나선 산악인 엄홍길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웃겨도 경박하게 웃길 수 없는 장면들로 스크린을 채울 수 밖에 없는 영화다.
‘히말라야’는 작심한 듯 관객이 예상한 궤적을 벗어나 자기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마치 그곳에 산이 있어 올랐을 뿐이라는 산악인의 흔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말을 카메라로 실천하듯 산악인의 고행을 스크린에 묵묵히 옮긴다. 살을 에는 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그저 정상을 향해 걷고 기다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곳에 다다른 산악인처럼 영화는 우직하고 또 우직하다. 어떤 장면은 무뚝뚝하고 어떤 장면은 살짝 웃기려 하며 또 어떤 장면은 신파로 치부할 만한데 극장 문을 나설 때면 가슴에 감동의 회오리가 인다. 무정한 산을 배경으로 무정하게 살 수 없는 뜨거운 사람들의 풍경을 125분 동안 펼쳐낸다. 산쟁이들에게 상업영화가 바치는 최고의 헌사로 기억될 만하다.
영화는 베테랑 산악인 엄홍길(황정민)이 풋내기 산악인 박무택(정우)을 히말라야에서 구조하면서 출발선에 선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무택은 이후 홍길의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14좌 등정을 지원하며 중견 산악인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산에서 죽음을 맞게 되고 홍길은 동료들을 모아 무택의 시신을 수습하려 한다.
여러 감상포인트를 지닌 작품이다. 정상에 오른 산악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유려한 풍경은 왜 그토록 산악인들이 힘들게 고봉에 오르려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종종 1인칭시점으로 고봉을 오르는 모습을 전하며 등반의 고통과 희열을 전한다. 네팔 히말라야 산자락과 프랑스 몽블랑 등을 오가며 5개월 동안 촬영한 노고가 화면에 뚜렷하다. 주연 황정민과 정우의 연기는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여성대원 명애를 연기한 라미란을 비롯해 조성하, 김인권, 김원해, 이해영, 정유미 등 조연들의 연기앙상블도 좋다. 16일 개봉, 12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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