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팝의 진화인가, K팝의 변질인가.
미국 뉴욕에서 한국인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남성 5인조 K팝 그룹이 결성돼 지난 4월 첫 싱글을 발표했다. ‘실험’을 뜻하는 ‘experiment’를 줄여 ‘EXP’라고 이름 붙인 이 그룹은 한국어로 노래하긴 하지만 구성은 흑인과 백인, 일본계 미국인이다. 이어 싱글을 한 번 더 냈고 내년 2월에는 세 번째 싱글도 발표한다.
최근 NBC 보도에 따르면 이 그룹의 산파는 서울에서 태어나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K팝에 관심을 가져온 김보라(32)씨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원 MFA(예술학 석사) 과정 진학을 위해 뉴욕으로 온 그는 거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 났다. 한국 사람 아닌 뮤지션들로 K팝 멤버를 구성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김씨는 그래서 K팝을 좋아하는 일본계 카린 쿠로다, 대만계 서맨사 샤오와 함께 올해 초 IMMABB(I’m Making A Boy Band)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쿠로다는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석사 과정이고, 샤오는 네덜란드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다. 김씨는 이 방송과 인터뷰에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K팝은 새로운 문화”라며 “우리는 그들에게 K팝이란 무엇인지, K팝 아이돌 그룹은 어떤 모습일 수 있을지 생각해보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P는 지난해 11월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당시 참가자는 150명 정도였고 하루에서 길게 사흘이 걸린 세 차례 오디션 과정을 거쳤다. 오디션에서 참가자들은 노래를 불렀고, 춤을 췄으며,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릴 공연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이라는 시나리오 설정에 따라 역할 연기도 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시메 코스타(25)는 최종 관문을 통과해 멤버가 됐다. 코스타는 “음악, 춤, 새로운 패션 등 (K팝의)모든 요소들에 시각적으로 음악적으로 매료됐다”며 “(K팝과)사랑에 빠졌고 그 길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K팝 그룹 활동에 가장 어려운 점으로 ‘한국어’를 꼽았다. 결성되고 얼마 안 돼 나온 첫 싱글 ‘Luv/Wrong’은 그래서 거의 영어로 불렀다. 매주 한국어 수업을 거쳐 발표한 두 번째 싱글 ‘Nolja Let’s Party’에는 한국어 비중이 훨씬 늘었다. 내년 2월 발표할 세 번째 싱글 타이틀(‘Feel Like This’)은 가사 대부분이 한국어다.

그런데 첫 싱글 발표 직후에 제작자도, 그룹 멤버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일부 K팝 팬들이 한국인이 없는 이 K팝 그룹이 K팝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라며 댓글로 욕을 퍼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코스타는 “발표 직후 인스타그램에 7,000~8,000건의 댓글이 달렸는데 다를 분개하고 있었다”며 “인종차별과 성소수자 혐오 욕설들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한 K팝 전문 인터넷사이트에서는 이들이 EXO를 베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씨는 이런 비난들이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우리의 목적은 K팝이란, K팝 팬덤이란 무엇인지 탐색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댓글 사태로 배운 게 하나 있다고 말했다. “K팝 팬들은 K팝 문화에 대단히 방어적이며, 그룹 멤버들이 한국인이거나 적어도 아시아인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런 댓글을 단 사람들이나 우리의 작업에 분노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더 많은 콘텐츠를 보여줌으로써 더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이 방송은 덧붙였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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