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에 이토록 절절한 멜로 연기가 가능한 남자배우가 국내에 또 있을까 싶다. 이번 작품에서도 선하고 따뜻한 눈빛, 낮고 부드럽게 깔리는 목소리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고 하자 배우 지진희(44)가 미소로 끄덕인다. 7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 집에서 만난 그는 특유의 정확한 발음으로 대답을 시작했다.
“자상한 이미지 도움을 좀 받았죠 (웃음). 감독님도 저의 그런 모습 때문에 캐스팅 하신 것 같아요.” SBS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에서 그가 연기하는 최진언이 염치없는 불륜남이 아닐 수 있었던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불륜을 저지르고도 남을 놈이란 소리를 들을만한 이미지였다면 지금의 인기도 없었을 것 같다”며 쑥스러워했다.
50부작인 ‘애인있어요’는 현재 도해강(김현주)의 기억 찾기가 한창인 가운데 6일 28회가 방송되며 종반부를 향하고 있다. 야망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던 해강이 이날 자신의 추악했던 과거를 기억해내면서 자신을 떠났던 전 남편 진언과의 관계에도 관심이 모아지는 상황.
지진희는 불의의 사고로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전 아내에 대한 사랑을 진언이 다시 깨달은 이후부터 주변의 눈빛들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해강을 떠나 순수한 여대생 강설리(박한별)에게 도피했던 드라마 초반엔 중년 여성 시청자로부터 육성 욕까지 들을 정도로 ‘국민 불륜남’이 되나 싶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며칠 전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동네 아주머니가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하시는데 눈빛이 정말 변하셨어요.(웃음)”
대신 지진희는 최진언을 “남자들은 다 싫어하는 캐릭터”라고 평가했다. 자신의 감정 때문에 결국 설리를 버리면서도 여성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인물이라니. 지진희는 “우유부단한 진언 때문에 설리가 안타까워지는 건 사실이다. 촬영장에서 (박)한별이를 볼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 내가 죽일 놈이다”라는 농담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내 아내에요. 그냥 알아요. 내가 알아요”라며 애절한 눈빛을 보이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에게 “해강아, 여보”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심장폭행남’ ‘눈빛 임신’이란 다소 과격한 별명을 붙여줬다. 지진희는 “처음엔 무서운 별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니 고맙다”며 “그래도 예쁜 별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상대 배우 김현주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극중 도해강과 독고용기로 1인 2역을 해내는 김현주에 대해 지진희는 “완벽한 캐스팅이다. 우리나라에서 1인 2역을 그렇게 거부감 없이 오버하지 않고 해내는 여배우는 김현주 말고는 없다”며 “그 정도 연륜에 더 기대할 수 있는 연기가 있다는 게 부럽고 존경스럽다”고 치켜세웠다.
지난 8월 방송을 시작한 이후 3~4%대의 저조한 시청률로 빛을 보지 못했던 드라마는 진언과 해강이 다시 사랑에 빠지면서 시청률도 11%대로 반등했다. 주말드라마 치고는 높다고볼 수 없는 수치다. 그럼에도 지진희는 “30~40대 시청자 대부분이 집에서 드라마를 잘 안 본다. 다시 보기로 찾아보는 분들인데 그래서 더 고맙다”며 “얼마 전에도 배우들과 시청률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봐주는 팬들을 위해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다”며 의연해 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