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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무책임-무능력 '디지털 문맹'에서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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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무책임-무능력 '디지털 문맹'에서 탈출하라

입력
2015.12.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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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범과 후니다 킴으로 구성된 프로토룸은 컴퓨팅 매체를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하고 창작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 집단이다. 사진은 후니다 킴이 개발한 '햅틱사운드 카드 0.7'. 카드에 전도성 실을 연결하면 소리가 나는데, 연결 방법을 달리할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나온다. 이 장치를 여러 개 연결하면 합주도 가능하다. ⓒ 프로토룸
김승범과 후니다 킴으로 구성된 프로토룸은 컴퓨팅 매체를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하고 창작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 집단이다. 사진은 후니다 킴이 개발한 '햅틱사운드 카드 0.7'. 카드에 전도성 실을 연결하면 소리가 나는데, 연결 방법을 달리할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나온다. 이 장치를 여러 개 연결하면 합주도 가능하다. ⓒ 프로토룸

현대인의 일상생활 거의 모든 영역이 자동화되면서 대중에게는 무지와 무책임, 무능력이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날로 가속화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디지털화된 시스템을 기업과 정부가 알아서 운영해주길 바란다. 성직자 도움 없이는 성경을 읽지 못했던 중세의 문맹자들이 꼭 이런 신세였다. 이대로라면 2000년대와 2010년대는 디지털 중세기로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도 혁신적인 개선이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의 기만적인 마케팅에 대중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나의 정보 자산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대중이 처한 무식의 비참함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 전반에서 지식의 하방이 이뤄져야 한다. 국가 교육정책의 변화만 기다려서는 될 일도 안 된다. 시민사회가 역량을 모아 디지털 중세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계몽의 기획을 준비해야 한다.

디지털 정보 모르는 21세기 문맹

정보기술(IT) 자문 기관인 가트너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정보의 홍수에 대응하기 위한 ‘만물 정보(Information of EverythingㆍIoE)’ 기술이 주목 받을 것이라고 한다. 사물인터넷의 접속 환경은 공기나 중력처럼 지구 어디에나 편재하는 제2의 자연으로 확장될 것이다. 유입되는 정보의 양은 우주적 단위로 폭증할 것이며, 비트화된 정보만이 실재하는 모든 정보의 총체로 인식될 시대가 머지않았다. 밀레니엄의 두 번째 10년이 끝나기 전 인터넷은 정보와 동의어가 될 것이다.

의미 있는 정보와 그렇지 못한 것을 신속하게 판별하고, 부스러기 정보에 불과한 것을 재구성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면 폭주하는 정보 환경에 대응할 인지 능력이 증강돼야 한다. 이를 돕는 각종 스마트 장치, 비트화된 정보를 직접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도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 전략 역시 어쨌거나 이러한 기조를 좇고 있다.

전통적 문자해독 능력에서 디지털 리터러시에 이르기까지, 산업생태계의 격변기마다 국가적 기획으로 새로운 앎과 배움이 장려되거나 강제됐다. 리터러시는 언어를 매개로 앎과 무지를 가늠하는 범주이자, 국가와 자본이 노동자에게 주문하는 인지노동의 목록이다. 코딩어 능력을 비롯해 디지털 리터러시에 능숙한 인구가 늘어날수록 집단지성, 접속지성이라 불리는 사회적 역량은 강화될 것이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그의 저작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중 ‘기계에 관한 단상’으로 알려진 장에서 ‘일반지성’이라는 표현으로 정의내린 그 형태를 의미한다.

프로토품의 멤버인 김승범이 2014년 아트센터 나비에서 화개보드2 워크숍을 열고 있다. 화개보드는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는 오픈소스 하드웨어 플래폼으로 컴퓨팅 기술의 원리와 철학을 이해하는 장치다. ⓒnabimaker
프로토품의 멤버인 김승범이 2014년 아트센터 나비에서 화개보드2 워크숍을 열고 있다. 화개보드는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는 오픈소스 하드웨어 플래폼으로 컴퓨팅 기술의 원리와 철학을 이해하는 장치다. ⓒnabimaker

오늘날 우리는 무엇인가를 배워서 익힐 때마다 구직 활동이나 승진에 대비한 스펙 쌓기를 의식한다. 상품이나 돈이 되지 못하는 지식을 시대에 뒤처진 경쟁력 없는 것으로 괄시하는 세태에 익숙하다. 디지털 기술이 처음 나타날 때만 해도 보수 체제에 도전해 변화와 혁신을 꿈꿨던 비주류 문화운동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디지털 신자유주의의 수익 모델에 철저히 구속돼 있다. 경제 체제에 복무하는 리터러시는 앎과 무지의 경계선에서 교육 그 자체를 질문하지 않는다.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비트를 돈처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논리만 강고하다. 이 기준에선 지식의 효용가치 역시 판매 기간 대비 수익성을 따지는 상품으로 평가된다. 취업률 저하를 이유로 대학에서 퇴출되고 있는 기초 학문의 비참한 현실 또한 디지털 신자유주의가 주문하는 리터러시의 성격을 반증한다.

디지털 리터러시, 왜 필요한가

근대적 교양의 삼각편대였던 문ㆍ사ㆍ철(文ㆍ史ㆍ哲)을 비롯해 기초 학문의 본령은 앎과 배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끈질기게 되묻고 성찰하는 것에 있다. 왜 배워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알아야 하는가? 지금 내가 서 있는 앎과 무지의 경계는 어제와 어떻게 다른가? 배움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돈만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더 구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경제 논리를 앞세워 말소해선 안 된다. 디지털 리터러시 기획 역시 앎의 부가가치를 좇는 일만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와 삶의 관계를 숙고하는 질문들로 리셋할 수 있다. 무지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기 위한 적극적인 질문과 사유 없이는 얻기 힘들기 때문에 앎만큼이나 값진 성취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질문하지 않는 자동화된 지식이다.

디지털 리터러시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성찰함에 있어 테크놀로지의 그리스어 어원 ‘테크네(τ?χνη)’를 상기하는 일 또한 근본적 질문에 닿으려는 시도다. 기술에 입각한 인간의 제작활동 일반을 일컫는 테크네는 예술(art), 숙련기술(skill), 공예(craft)를 포괄할 뿐만 아니라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관계를 근대 자본주의의 도구적 테크놀로지 너머로 이끈다. 하이데거는 테크네의 본질이 세계를 비도구적 측면에 풀어놓고, 탈은폐하는 것이며, 밖으로 내어놓는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또한 그 움직임은 역동적이고 지속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시장 경쟁에서 상품과 서비스 제조에만 정주하는 테크놀로지는 그 이상의 잠재적 역량을 발휘할 변화의 기회를 찾기 어렵다. 신자유주의에 복속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는 이 같은 사례가 허다하다. 가령 사회적 배치를 바꾸는 강력한 전기충격일 수 있었던 사회관계망(Social Network)은 광고 대행업, 정보 가공업으로 퇴행했고, 스마트폰은 카카오톡 감청 사건에서 보듯 국가와 기업이 시민을 감시하는 장치로 공공연히 악용되고 있다. 비루한 권력의 도구가 된 기술을 어떻게 해야 다른 사회적 배치에 풀어놓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테크네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테크놀로지에 대한 테크네의 모색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절실한 디지털 리터러시의 핵심 요건이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자생의 움직임

하지만 그 일을 누가 가르치고 배울 수 있을까? 100년 전, 식민지 지식인들이 근대적 문해 능력을 키웠던 때를 상상해본다. 이 땅에서 근대 문학이 태동하던 장면이기도 하다. 그때 그들이 수행했던 리터러시는 근대의 총체에 다가서려는 모든 기획에 맞닿아 있었다. 그 시절의 기개에 비하면 오늘날 대학 학제의 교육 역량이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에서 가능한 시민 사회의 가능성을 육성하고 창의성을 촉진하기는커녕 기업이 요구하는 인적자원 공급에만 매달리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장이 이 시대의 대학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정부가 추진해온 교육정책의 폐해이기도 하다. 대학만 아니라 사회 어디에서나 돈을 버는 기술을 숭앙하고 그렇지 못한 기술을 경멸하는 분위기는 노골적이다. 반대로 어째서 이토록 돈에 강박된 채 살 수밖에 없는 것인지 이유를 묻는 일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2012년 청개구리제작소의 일곱 번째 워크숍 ‘약한 자급을 위한 생활의 4종 기예’의 포스터. 송수현, 최빛나 활동가로 구성된 청개구리제작소는 "소비를 넘어 직접 제작하는 활동은 사물을 통한 지각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고 강조한다. @Fabcoop
2012년 청개구리제작소의 일곱 번째 워크숍 ‘약한 자급을 위한 생활의 4종 기예’의 포스터. 송수현, 최빛나 활동가로 구성된 청개구리제작소는 "소비를 넘어 직접 제작하는 활동은 사물을 통한 지각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고 강조한다. @Fabcoop

자본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우리 삶의 관계를 면밀히 이해하고 대안적 삶의 실천을 이끌어낼 기술 리터러시와 이를 교육할 교육법을 창안해야 한다. 이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공생의 기술을 디지털 테크놀로지에서 얻어낼 수 있을까? 시민사회가 이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청개구리제작소와 프로토룸 스튜디오처럼 규모와 인력은 미미하지만 열정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자생적 교육단체가 생겨나고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당장 변화가 생겨나지 않는다. 하지만 벼락이 떨어지기 직전 구름 속에선 전자들이 어지러운 공명을 일으킨다고 했다. 들뢰즈는 이를 ‘어두운 전조’라고 불렀다. 디지털 신자유주의에 맞서 시민사회가 만들어야 할 기술 리터러시는 다양한 분야의 협업과 교류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 교양의 삼각 편대는 어두운 전조에 새롭게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언어 환경 전반에 기술적이고 정신적인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사물인터넷 시대의 문학 역사 철학은 아무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고 예측할 수 없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언어, 비트의 신호로 전환할 수 없는 풍부한 노이즈로 가득 찬 언어를 복원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보통신기술 담론이 입에 올리려 하지 않는 주제를 탈은폐시키는 일을 머뭇거려선 안 된다. 디지털 신자유주의가 인류의 사회, 문화, 신경체제에 가한 영구적 손상과 인간적 존엄을 짓밟는 노동 착취의 비참함을 직시해야 한다.

임태훈ㆍ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

임태훈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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