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KBS 사장 출신이 물러난 지 1년 반 만에, 그것도 특정 정당에 가입해 정치활동을 선언한 전례가 없습니다. 임기 내내 불공정 편파방송을 일삼아 KBS를 망쳐놓고 쫓겨난 사람이 KBS를 팔아 정치를 하겠다는 거죠.”
길환영 전 KBS 사장이 내년 제20대 총선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데 대해 KBS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길 전 사장의 정치활동 개시 소식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비판을 자제하라는 등 길 사장이 수시로 보도 내용에 개입했고 이는 청와대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란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의 폭로 여파로 KBS 사장직에서 해임된 지 1년 반 만에 나왔다. 당시 KBS 양대 노조는 길 전 사장의 부당한 보도개입에 항의하며 최초로 공동 총파업까지 했다.
길 전 사장의 출마 선언을 한 전직 언론인의 개인적 선택으로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공영방송 수장이란 직책이 갖는 엄중한 책임감 때문이다. 공무원은 아니나 KBS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만큼 공직자에 준하는 신분으로 여겨진다. 재산을 공개하고 퇴임 후에도 직무상 취득한 비밀 유지와 취업제한을 광범위하게 제한 받는 자리다. 올해부턴 사장 후보자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도 받는다. 이미 KBS에서 ‘KBS 사장직 다음은 백수’란 농담 섞인 말이 기정 사실이 된 것도 그만큼 퇴임 후 함부로 처신해서는 안 되는 자리여서다.
수신료를 낸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고 공익을 위해 전파를 사용하는 중책의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특정 정당에 복무하겠다는 길 전 사장의 모습은 과연 그가 KBS의 보도공정성과 정치독립성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는지조차 의심케 한다. 그가 최근 출마 기자회견에서 밝힌 “30여년 공영 방송인으로서 쌓은 경력과 노하우,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이란 출마의 변이 염치없고 위험하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언론인의 경력을 쌓아왔다는 것인가?
게다가 길 전 사장은 자신을 해임한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무효소송을 제기했다가 지난 9월 패소 후 항소해 현재 2심 재판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중산층의 발전이란 가치를 지향하는 이념이 나와 맞다”며 새누리당에 입당해 공천을 받겠다는 이율배반적인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물론 그가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하지만 “KBS를 청와대 관제 방송으로 전락시켰다”는 이유로 구성원들의 비판을 받고 결국 해임된 KBS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직 사장으로서 자신의 분수를 지키기 바란다. 공천 여부를 떠나 본인이 먼저 결정을 재고하기를 권한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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